“영어 일자리 이렇게 많은 줄 몰랐어요”

  • 입력 2009년 1월 17일 02시 57분


지난해 7월부터 원어민 강사로 일하고 있는 다시 드로트(오른쪽), 메레디스 덴보 씨(가운데)가 한국에서 원어민 강사로 생활하는 즐거움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은 한국 현대미술 연구차 방문한 드로트 씨의 동생 데븐 씨. 대학생 인턴기자 박소연(성신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4학년)
지난해 7월부터 원어민 강사로 일하고 있는 다시 드로트(오른쪽), 메레디스 덴보 씨(가운데)가 한국에서 원어민 강사로 생활하는 즐거움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은 한국 현대미술 연구차 방문한 드로트 씨의 동생 데븐 씨. 대학생 인턴기자 박소연(성신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4학년)
■ 원어민 강사들이 말하는 ‘한국서 산다는 것’

환율 올라 힘들지만 미국 상황은 더 안좋아

조기교육보다 더 큰 문제는 가르치는 시스템

서울시 교육청 140명 모집에 400여 명 몰려

“세계 경제가 다 엉망이라 오히려 한국이 안전해요.”

작년 7월부터 서울 S외국어학원에서 원어민 강사로 일하고 있는 다시 드로트(24·여·미국) 씨.

9일 서울 마포구 한 커피숍에서 고교 동창인 메레디스 덴보(23·여·미국) 씨와 수다를 떨던 그는 “한국처럼 작은 나라에 영어와 관련된 일자리가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경제 사정이 좋아지고, 환율이 안정될 때까지는 저금도 상대적으로 안전한 한국 계좌에 할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덴보 씨도 “원어민 강사는 미국 대학생들 사이에서 선호도가 높다”며 “원래 일본에 가려다가 한국이 항공료도 지원하고 대우도 더 나아 이쪽으로 오게 됐다”고 거들었다.

현재 같은 학원에서 일하고 있는 두 사람은 고교 졸업 후 다른 대학으로 진학했다가 한국에 와 다시 만났다.

드로트 씨와 덴보 씨는 영어 교육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학부모들의 극성을 염려했다.

덴보 씨는 “듣기로는 네 살배기 등 어린 나이에 영어를 배우는 곳도 있다고 들었다”며 “인터넷에 보니까 학원비도 한 달에 80만∼90만 원으로 꽤 비싸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드로트 씨는 “어렸을 때부터 영어를 배우는 것이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문제는 영어를 배우기 위한 시스템이다. 아이에게 너무 많은 압력을 주는 시스템은 영어 교육과는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덴보 씨도 “한국 아이들은 오전 9시에 나가서 오후 9시에 들어온다고 들었다”며 “한국 학부모들이 피아노 태권도 영어 학원을 보내는 게 아이들 재능을 찾아주기 위해 그러는 것 같지만, 그게 아이들에게 너무 압박을 많이 주는 것 같다. 미국은 그렇지는 않다”고 맞장구쳤다.

지난해 환율이 크게 오르면서 학교와 학원에서는 원어민 강사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처럼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컸다. 하지만 기우(杞憂)였다. 전 세계 경기 불황으로 미국과 캐나다 등지에서도 일자리가 줄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 W외국어학원에서 일하는 샘 위김턴(30·호주) 씨는 “호주달러 가치가 미국 달러 가치의 절반 수준으로 알고 있다”며 “한국에 있는 것이 행복하고 계속 머물 계획”이라고 말했다.

3년 동안 사설 학원과 학교에서 원어민 강사로 일한 유진 캘러웨이(32·미국) 씨는 지난해 12월 계약이 끝나면 미국으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그러나 그는 지난해 말 마음을 바꿔 연장 계약서에 서명했다.

캘러웨이 씨는 “지난해 환율 급등으로 소득이 15∼20% 줄었지만 미국에 간다고 당장 일자리가 생기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좀 더 일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학교에서 일하는 영어 원어민 보조교사는 원화를 기준으로 계약을 한다.

서울시교육청의 경우 1996년 원어민 교사를 처음 도입할 때는 달러를 기준으로 계약을 했지만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바꿨다.

원어민 교사가 되기 위해 한국행을 희망하는 지원자도 늘고 있다.

미국과 캐나다 등지에서 원어민 강사를 모집하고 있는 리크루팅 업체 관계자는 “한국이 원어민 교사에 대한 처우가 좋고, 무엇보다 월급을 안정적으로 지급하기 때문에 현지에서 선호도가 높다”고 말했다.

원어민 교사 선발 관리를 위탁·수행하는 국립국제교류진흥원 관계자도 “환율 상승세가 한풀 꺾인 데다 한국을 선호하는 외국인이 많아 원어민 교사 수급에 어려움이 없다”며 “올 1학기 때 588명을 선발할 예정인데 현재 900명 이상이 지원했다”고 말했다.

140명 안팎을 선발할 예정인 서울시교육청에도 두 배 이상인 400여 명의 희망자가 몰렸다.

부산시교육청 관계자는 “지금 한국을 떠나는 것보다 환율이 내린 뒤 떠나는 것이 이득이라는 생각으로 한국에 남는 원어민 교사들이 늘고 있다”며 “특히 본국에 돌아가도 일자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고학력층에서 계약 연장이 두드러진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내 경기 침체가 계속된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 이 기사 취재에는 본보 대학생 인턴기자 차윤탁(고려대 산업시스템정보공학과 3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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