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살아나면 집값 자극 요인될수도” 일부 지적
2005년 2월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일대 아파트 주민들이 최고 60층 높이로 재건축을 추진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온 나라가 떠들썩했다.
층수를 높이며 단지 안에 미니골프장과 인공연못까지 갖춘다고 하자 ‘초호화 아파트’라는 비난이 쇄도했다. 허가권을 가진 서울시는 집값 급등을 우려해 이 계획에 반대했다. 정부까지 투기 조짐을 차단하겠다고 나섰고, 재건축은 없던 일이 됐다.
하지만 압구정동 아파트를 비롯한 한강변 아파트는 앞으로 사업대상 토지의 25%를 기부하면 50층 이상 초고층 아파트로 재건축이 가능해진다.
19일 서울시가 발표한 ‘한강 공공성 회복 선언문’의 핵심은 이처럼 한강변 재건축 아파트의 층고 규제를 완화해 주는 대신 기부 받은 땅을 시민들에게 돌려주겠다는 데 있다. 이를 통해 한강을 영국 템스 강이나 프랑스 센 강 같은 세계적 명소로 만들겠다는 것.
오세훈 서울시장은 이날 선유도공원에서 기자설명회를 열고 “그동안 아파트에 막혀 사유화돼 있던 한강변을 시민의 공간으로 돌려드리고, 한강변의 스카이라인을 획기적으로 바꾸겠다”고 말했다.
○ 25% 이상 기부하면 초고층 아파트 허용
이에 따라 재건축 연한이 된 압구정동이나 이촌동, 여의도 등 한강변 아파트는 주민들이 동의하기만 하면 곧바로 50층 이상 아파트로 재건축을 추진할 수 있다.
조건은 사업지구 내 토지의 최소 25%를 공공을 위해 내놓는 것이다. 압구정지구의 면적은 약 115만 m²에 이른다.
시는 특히 한강 쪽으로 돌출돼 있는 부분(5만2000m²)을 집중적으로 기부 받아 공원과 복합 문화시설 등을 설치하는 한편 올림픽대로는 지하화해 시민들이 자유롭게 한강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여의도지구에 있는 재건축 아파트에 대해선 용도 구역을 주거지역에서 상업지역으로 올려주는 대신 40% 이상 기부를 받는다. 최근 입주 중인 잠실 재건축 단지의 기부 비율은 약 7%에 불과하다.
시는 성수나 이촌, 반포, 합정, 당산의 재건축 아파트나 일반주택지역에 대해서도 25% 이상 기부를 받고 최고 50층까지 건축을 허가할 계획이다.
이날 선언은 지금처럼 한강변 아파트의 재건축을 방치할 경우 한강이 성냥갑 아파트 숲에 둘러싸일 수밖에 없다는 위기의식에서 비롯됐다. 시의 분석에 따르면 한강에 인접한 주거지 중 잠실 재건축 지역을 포함해 20%가량이 아파트로 개발됐다. 나머지 80%는 재건축을 준비 중이거나 재건축 대상 지역으로 남아 있다.
건설 경기 부양을 통한 경기 회복이 필요하다는 점도 고려됐다.
시는 압구정과 이촌, 여의도, 성수, 합정 등 5대 전략정비구역이 통합 개발되면 총생산 28조6000억 원, 20만 명의 고용유발효과를 창출할 것으로 전망했다.
○ 한강발(發) 집값 불안 vs 투기 방지책 마련
전문가들은 한강변 초고층 아파트 허용이 당장은 경기 침체 여파로 집값에 큰 영향이 없겠지만 장기적으로 경기가 회복되면 집값 불안을 가져올 수도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부동산정보업체인 부동산114에 따르면 초고층 재건축 허용에 따라 여의도와 이촌, 반포, 압구정, 잠실 등에서 5만7000여 채가 혜택을 받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가운데 개별적으로 재건축을 추진하고 있는 한강변 아파트는 1만4000여 채에 이른다.
부동산써브 함영진 실장은 “기부 받은 대지에 공원 등을 만들면 녹지 면적도 넓어져 주변 환경이 좋아진다”며 “재산가치가 높은 한강 조망권도 훨씬 좋아져 가격이 오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스피드뱅크 박원갑 부사장은 “한강 주변 지역은 여의도와 반포, 잠실, 이촌 등 서울시내 주요 지역이어서 초고층 재건축으로 인한 파문이 상당히 클 것”이라며 “지금과 같은 경기 침체기에는 집값이 추가로 떨어지는 것을 막아주겠지만 경기가 살아나면 투기 등으로 인해 집값을 불안하게 만드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재건축 수익성을 높이는 데는 그다지 도움이 안 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부동산뱅크 김용진 이사는 “용적률은 변화가 없고 용지 면적의 25%를 기부하도록 해 재건축 자체만으로 얻는 수익이 별로 없다”며 “경기가 침체된 상황이어서 당장 재건축을 추진하려고 해도 속도를 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시는 한강변 전 지역의 토지거래 동향을 지속적으로 관찰해 투기 조짐이 포착되면 즉시 토지거래허가구역 또는 투기지역, 주택거래신고지역 등으로 묶기로 했다. 또 단독주택지에 대해선 ‘지분 쪼개기’에 의한 투기 방지를 위해 건축허가를 제한할 방침이다.
서울시 김효수 주택국장은 “주민들은 재산 가치의 손실 없이 주거 여건이 좋아지고, 시는 시민들을 위한 공공용지 및 시설을 제공받을 수 있어 ‘합리적 거래’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