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인을 성폭행한 혐의로 1심에서 강간죄가 인정돼 유죄 판결을 선고받은 A(42) 씨가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본보 17일자 A1·10면 참조 부부간 강간죄 인정 첫 판결
“성폭력 남편에 경종” 여성계 반색
20일 오후 2시 반경 부산 남구의 2층 자택에서 A 씨가 부엌문에 전깃줄로 목을 매 숨져 있는 것을 외조카 B(23) 씨가 발견했다. A 씨는 낮 12시경에도 어머니(72)에게 전화를 걸어 “죽고 싶다”고 말한 뒤 같은 곳에서 자살을 시도했다.
B 씨는 “할머니와 함께 외삼촌 집에 가서 마음을 진정시켰지만 외삼촌이 우리를 보내면서 손을 흔든 점이 마음에 걸렸다”며 “점심을 먹고 다시 삼촌 집에 왔더니 같은 장소에서 목을 맨 채 숨져 있었다”고 말했다.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A 씨는 16일 부산지법에서 결혼정보회사를 통해 만난 필리핀인 아내(24)가 생리 중이라는 이유로 성관계를 거부하자 흉기로 위협해 강제로 성관계를 한 혐의(특수강간)로 불구속 기소돼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당시 판결은 부부간 강제적 성관계를 강제추행으로 보지 않고 부부 사이 강간죄를 처음 인정한 것이었다. 재판부는 “아내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무시하고 강간한 것이므로 강간죄의 보호대상에 해당된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A 씨는 선고 직후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아내에게 억지로 성관계를 요구한 것은 인정하지만 폭력을 휘두르지는 않았다. 아내는 집안일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온갖 구실을 붙여 돈을 요구했다”면서 “나도 잘못이 있지만 판결 결과를 일부 수긍할 수 없다”며 억울해했다.
또 그는 “국제결혼의 피해자이지만 검찰 조사와 재판과정에서 소극적으로 대처해 이런 결과가 나온 것 같다”며 항소할 뜻을 밝히기도 했다.
경찰은 A 씨가 부부강간죄로 형사처벌을 받은 것을 비관해 자살한 것으로 보고 정확한 경위를 조사 중이다.
부산지법 관계자는 “검찰의 공소 사실에 따라 절차대로 재판을 진행했는데 피고인이 자살해 당혹스럽다”고 밝혔다.
부산=윤희각 기자 tot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