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내 김석기 경질론 대두… 쇄신 드라이브 ‘암초’
靑 “사고경위 파악 주력… 불법시위자는 단호 조치”
“산 넘어 또 산이다.”
20일 서울 용산구 철거민 농성 진압 과정에서 발생한 참사로 정국이 소용돌이에 휩싸이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19일 경제부처 중심으로 개각을 단행하고 경제위기 극복에 전력을 다하기로 했지만 하루 만에 대형 악재를 만나 향후 정국운영 구상에 적지 않은 차질을 빚을 것으로 보인다.
신임 각료 인사청문회와 쟁점 법안 처리를 앞둔 상황에서 이번 사건이 터지는 바람에 정치권에도 예측하기 힘든 후폭풍이 불어 닥칠 것으로 전망된다.
○ 개각 하루 만에 터진 대형 악재
이 대통령의 집권 1년차는 어수선했다. 취임하자마자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집회의 불길이 번지는 바람에 일을 제대로 못했고, 9월 이후에는 미국발 금융위기에 나라 전체가 흔들렸다.
각종 ‘MB 개혁법안’도 국회에 발목이 잡힌 채 해를 넘겼다.
이런 상황에서 이 대통령은 4대 사정기관장 인사에 이어 ‘2기 경제팀’을 새로 출범시키고 젊은 측근들을 정부 요직에 포진시키는 ‘1·19 개각’을 단행함으로써 경제위기 극복과 함께 국정을 다잡으려 했다. 그런데 개각 하루 만에 민심을 흉흉하게 만드는 돌발 악재가 터진 것이다.
특히 빈곤층을 상징하는 철거민이 경찰 진압 과정에서 숨진 것은 사건 경위와 상관없이 민심을 자극할 수 있는 인화력 높은 사안이라는 점에서 청와대의 고민은 깊다.
경찰청장에 내정된 김석기 서울청장이 지휘라인에 있었고 국가정보원장에 내정된 원세훈 행정안전부 장관도 이번 사건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도 향후 정국이 순탄치 않음을 예고한다.
○ 한나라당 일각의 ‘조기문책론’
한나라당은 초긴장 상태다.
박희태 대표는 이날 오후 서울 용산구민회관에서 열린 긴급 최고위원회의에서 “이번 사건의 책임 소재를 가리고 재발 방지 대책을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야당을 향해 “진상이 밝혀지지도 않은 상황에서 정치 공세를 하는 것은 비통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조기 문책론’으로 정면 돌파해야 한다는 주장이 높아지고 있다.
당장 홍준표 원내대표부터 조속한 책임자 문책을 주장했다.
이날 화재 현장을 찾은 홍 원내대표에게 일부 농성자가 “개××, 왜 이제야 오느냐”고 욕설을 퍼붓자 홍 원내대표는 “저게 민심이다. 서둘러 수습해야 한다. 김석기 서울지방경찰청장이 물러서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진상 규명이 채 끝나지 않았지만 당이 ‘조기 문책론’을 주도해 과잉 진압 책임론이 확산되는 것을 미리 막고 당에 쏟아지는 비난도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친이(親李·친이명박) 계열인 공성진 최고위원도 “경위야 어찌됐든 국가로부터 보호받아야 할 빈민들에게 사고가 생겼다면 거기에 합당한 문책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 청와대, 원세훈-김석기 분리 대응?
청와대는 일단 사고 경위를 신속하게 파악하는 데 주력할 계획이다. 유가족을 위로해 민심을 달래면서 동시에 진상 규명 결과에 따라 불법 시위자는 단호하게 조치한다는 방침이다.
이어 ‘선(先) 진상규명-후(後) 책임추궁’ 절차를 밟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청와대 내부에선 이미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에 대한 문책이 불가피한 것 아니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자칫 문책을 미루다간 국가정보원장으로 내정된 원세훈 행정안전부 장관의 위치도 흔들릴 수 있다.
이 경우 이 대통령의 국정운영 구상은 완전히 허물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여권 핵심 내에서 팽배하다.
한편 이번 참사는 2월 임시국회의 쟁점법안 처리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한나라당의 한 당직자는 “이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율이 떨어지고 여당이 수세에 몰리게 되면 핵심 쟁점법안 상정과 논의 자체가 어려운 분위기가 될 수 있다”며 “합의 처리를 약속한 미디어 관계법과 금산분리 관련법도 강행 처리가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정용관 기자 yongari@donga.com
박정훈 기자 sunshad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