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12 경찰 물대포 - 철거민 벽돌 공방전
06:45 특공대, 컨테이너 타고 옥상 진입
망루 3층까지 접근… 화염병 저항
07:10 망루 주변서 불길 일어나기 시작
20일 오전 5시 반 서울 용산구 한강로2가 남일당 빌딩 옥상.
경찰의 동향을 살피던 전국철거민연합(전철련) 회원 이모(37) 씨가 동료 시위대에게 “살수차가 떴다”고 소리쳤다. 그는 19일 새벽부터 30여 명과 함께 “철거 전 생존대책을 세워 달라”고 요구하며 이 건물을 점거하고 있었다.
“자진 철수하라”는 경찰의 경고방송이 10여 차례 흘러 나왔다. 그러나 이 씨는 동료들과 경찰 진압에 대비했다. 일명 ‘골리앗’이라고 하는 5m 높이의 철제구조물 망루로 화염병 20여 개와 화염병 제조에 필요한 시너통 10여 개도 날랐다.
오전 6시 12분. 건물 주변에 배치된 살수차 4대에서 물대포가 발사됐다. 이 씨는 깨진 벽돌을 건물 아래로 던지며 경찰에 응수했다.
오전 6시 45분. 이 씨와 함께 건물 옥상에 있던 전철련 간부 김모(49) 씨는 10t짜리 컨테이너가 기중기에 실려 옥상에 올라오는 것을 보고 망루 4층 꼭대기로 대피했다. 컨테이너 안에는 경찰특공대원 13명이 타고 있었다.
경찰특공대 제1제대 김모(33) 반장은 컨테이너에서 내린 뒤 재빠르게 옥상 망루에 접근했다. 쏘아올린 물대포 탓에 발목까지 물이 찼다. 잠긴 출입문을 연장으로 뚫는 동안 망루 위에 있던 시위대는 아래로 화염병을 던졌다.
김 반장 일행이 옷에 붙은 불을 소화기로 꺼가며 가까스로 망루 안으로 들어섰을 때 시너와 염산 냄새가 코를 찔렀다. 내부 합판 사이사이로 시너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특공대원들은 쇠파이프를 휘두르며 격렬하게 저항하는 시위대를 한 층 한 층 제압하면서 망루 3층까지 접근했다. 그러자 꼭대기인 4층에서 새총으로 골프공을 쏘던 시위대 4, 5명 중 한 명이 화염병을 던지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1층 시너통 주변에서 “펑” “펑” 소리가 나면서 불길이 순식간에 번졌다.
이때가 오전 7시 10분경. 김 반장은 즉각 망루 1층으로 내려와 배를 깔고 납작 엎드린 채 기어서 망루를 빠져나왔다. 하지만 그 뒤에 있던 동료 대원 한 명이 끝내 입구에 닿지 못했다. 망루가 전소된 뒤 시신으로 발견된 김남훈 경장이었다.
같은 시간, 망루 꼭대기에 있던 전철련 간부 김 씨도 망루 구멍을 통해 밖으로 나간 뒤 망루 철골에 매달려 있다가 열기를 참지 못하고 5m 아래 옥상으로 떨어졌다. 김 씨는 발목 골절상에 그쳤지만 함께 ‘최후의 보루’를 지켰던 동료들은 결국 불에 탄 주검으로 발견됐다.
오전 7시 20분. 남일당 빌딩 주변에서 청소를 하던 환경미화원 배모(48) 씨는 현장을 보기 위해 인근 자동차영업소 건물 5층으로 올라갔다. 망루 주변에는 이미 불길이 일고 있었고 망루 안에서 저항하던 철거민들은 군데군데 구멍을 통해 경찰에게 화염병을 던졌다.
배 씨는 “구멍이 작다 보니 밖으로 던지려던 화염병이 구멍을 통과하지 못한 채 안으로 떨어졌다”고 말했다.
당시 망루 안에는 철거민들이 가져다 놓은 시너 등 인화 물질 70여 통이 쌓여 있었다.
오전 7시 26분. 망루에서 “펑” 하는 폭발음이 나며 거대한 불꽃이 피어올랐고 망루는 1분 만에 무너져 내렸다. 화재가 발생하자 경찰은 옥상 외벽을 타고 순식간에 올라가 구호를 외치며 저항하는 철거민을 모두 연행했다. 작전 개시 2시간 만이었다.
망루의 불은 오전 8시 완전 진화됐다. 그러나 이날 진압작전으로 철거민 5명과 경찰특공대 김남훈 경장이 숨진 채 발견됐다.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