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낮 12시가 되면 학생식당에서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도시락을 받아 삼선동 비탈길에 있는 작은 집으로 들어가 할머니를 부른다. 문을 열고 나오는 할머니는 매일 나를 보며 환하게 웃어 주신다.
처음 할머니를 뵙던 날이 기억난다. 어두운 방안에서 머리가 하얗게 센 할머니 한 분이 나오셨다. 할머니는 나를 보자마자 두 손을 꼭 잡으며 지난번에 두고 간 도시락과 쪽지에 대해 고마워하셨다.
오히려 내가 약해 보인다며 미안해하셨다. 쪽지는 봉사 첫날 할머니가 집에 계시지 않아서 “오늘부터 제가 전달하게 됐어요. 맛있게 드세요. 내일도 올게요”라고 도시락에 붙여 놓았던 것이다. 반년이 지난 지금도 이 쪽지는 할머니 댁 거실 한쪽 벽에 붙어 있다.
가끔 수업이 없을 때는 할머니와 식탁에 마주 앉아 식사를 하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다. “여고 시절 전차에 올라타면 교복이 새까매졌다, 밤에 공부를 하다가 배가 고프면 우동 집에 가서 두 그릇이나 먹었다, 명동 국립극장에서 김구 선생님을 목격했다….”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느새 시계는 오후 1시가 넘는다.
지난해 추석, 어머니가 싸주신 송편과 과일을 들고 찾아갔을 때도 할머니는 굴곡 많았던 긴 인생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지만 즐거운 벗이 되고자 갔기에 눈에 힘을 주어가며 눈물을 꾹 참았다. 할머니는 명절 같은 게 없으면 좋겠다고 하셨지만 이번 추석은 참 재밌게 보냈다면서 활짝 웃어 주셨다. 돌아가는 내내 발걸음은 가볍고 마음은 훈훈한 온기로 가득했다.
어려운 이웃과 사회복지시설에는 예년에 비해 기부금이나 후원물품이 크게 줄어들었다고 한다. 경기 불황이 계속되면서 추워진 날씨만큼이나 우리의 마음까지 꽁꽁 얼어붙어 버린 듯해서 안타깝다. 이번 겨울은 가스연료비까지 올랐다고 하니 어려운 우리 이웃은 몸도 마음도 추운 겨울을 나야만 할 것 같다. 어려운 때일수록 서로서로가 따뜻한 정을 나누어 사랑의 온도를 1도씩만 올려 보면 어떨까?
정효원 한성대 경영학부 4학년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