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팔공산 갓바위(관봉 석조여래좌상·보물 431호)에 케이블카 설치를 추진하는 대구시의 구상이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지만 실제로 갓바위에 오르는 사람들은 케이블카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기자는 설 연휴를 앞둔 23일 오후 갓바위에 올랐다. 대구 동구 진인동 갓바위집단시설지구에서 갓바위까지는 2km.
25분가량 걸으면 관암사에 이른다. 여기서 등산객이나 기도를 위한 방문객 등은 돌계단을 따라 갓바위로 향한다.
갓바위까지 이어진 돌계단은 1400여 개. 차가운 날씨 탓인지 이날 갓바위를 찾은 사람은 많지 많았다.
계단을 하나씩 밟으면서 갓바위로 가는 사람들에게 기자는 케이블카 이야기를 꺼냈다. 대구시민인 60대 후반의 한 남성은 “수십 년 동안 갓바위를 찾았지만 요즘은 계단 오르기가 힘들다”며 “그렇지만 쉬어가며 오르더라도 갓바위는 이렇게 가는 게 맞다”고 말했다.
초등학생 자녀 둘을 데리고 온 40대 부부도 같은 생각이었다. 이들은 “언론 보도를 보니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해 케이블카를 설치하겠다는데 꼭 필요한지, 얼마나 정성스레 검토했는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갸웃했다.
갓바위를 100m가량 앞둔 곳에서 마이크를 통해 스님의 독경(讀經) 소리가 울려 퍼졌다. 평소와 다름없는 독경 소리였지만 케이블카 설치 논란 때문에 한 구절이 추가됐다. 독경 속에 ‘대구시는 갓바위 케이블카 설치 계획을 철회하라’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100여 명이 앉아 절을 하거나 명상에 잠겨 있던 갓바위 앞 기도마당 한쪽에는 ‘케이블카 설치 반대 서명’을 위한 탁자가 놓여 있었다.
대구와 경북, 부산, 서울 등지에서 찾아온 사람들의 주소와 서명이 빼곡했다. 하지만 서명대가 붐비지는 않았다. 한 기도객은 “갓바위하고 케이블카가 어울리느냐”고 반문했다.
또 갓바위 앞쪽의 촛불과 향불을 켜는 곳에는 대구시의 케이블카 설치 계획이 철회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문구가 인쇄된 큰 종이가 투명 테이프로 부착돼 있었다.
이 종이에는 갓바위를 관리하는 선본사(경북 경산시)와 신도 등의 이름으로 ‘케이블카는 한발 한발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팔공산에 올라 기도를 하는 성지(聖地)를 파괴하는 야만적인 일’이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향에 불을 붙여 꽂던 사람들에게 케이블카 이야기를 꺼내기가 어색했다.
갓바위 근처에서는 태국 관광객 서너 명이 한국 친구들과 함께 바위에 동전 붙이기를 시도하고 있었다.
이들은 “갓바위는 매우 보기 드문 불교 유산”이라며 “케이블카로 쉽게 오르는 것보다는 지금처럼 어렵게 올라야 정성스러운 기도가 마음에서 우러나올 것 같다”고 밝혔다.
이권효 기자 bori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