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이는 없고 사방에 올무와 덫…
등산로 바로 옆 나무 사이에도 올가미 설치
멧돼지-고라니-너구리… 곳곳 희생된 흔적
“여기에 올무가 있어요! 고라니 털도 수북해요!”
외침을 듣고 가까이 가봤지만 낙엽이 쌓인 나무와 나무 사이 좁은 공간에 놓인 올무(새나 짐승을 잡기 위해 만든 올가미)는 쉽게 눈에 띄지 않았다.
바로 앞에 가서야 올무는 모습을 드러냈고 주변에는 이미 희생된 고라니의 잔재도 흩어져 있었다.
겨울을 보내는 야생동물들이 이중고를 겪고 있다. 먹을 게 부족한 데다 자신들을 잡기 위해 사람이 촘촘히 설치한 올무와 덫을 피해나가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기 때문이다.
최근 야생동물 밀렵은 도시와 가까운 곳에서도 성행하고 있다. 인적이 드물지 않아 총기 대신 소리 없이 동물을 잡을 수 있는 올무와 덫, 창애(짐승을 꾀어서 잡는 틀) 등 밀렵도구를 이용한 사례가 계속 적발되는 것이 특징이다.
29일 오전 경기 남양주시 수동면 지둔리 축령산 줄기의 한 야산에서는 한국야생동식물보호관리협회 남양주지회 회원 20여 명이 밀렵도구 단속에 나섰다. 산에 오른 지 5분여 만에 멧돼지를 잡기 위해 설치해둔 올무가 연달아 발견됐다.
등산로에서 비켜난 나무와 나무 사이에 설치하고 풀로 살짝 덮어 얼핏 보면 알아채지 못하도록 잘 위장된 상태였다. 밀렵꾼들은 야생동물이 지나다닌 흔적을 파악해 등산객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이면 무차별적으로 올무를 놓고 있었다.
올무는 시중 철물점에서 4000원 선에 살 수 있는 철선을 나무에 매 여기에 걸린 동물이 앞으로 나아갈수록 목이 조이는 형태로 만들어져 있다.
특히 올무 가운데 철선이 두꺼운 멧돼지용이 많이 설치되는데 이는 야생동물 중 가장 많은 돈을 받고 팔 수 있기 때문이다. 밀렵꾼들은 600g에 1만 원 선을 받고 멧돼지를 음식점에 판매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큰 멧돼지는 200kg이 넘기 때문에 한번에 수백만 원을 챙길 수 있는 밀렵꾼들의 집중 표적이 되는 것.
고라니는 크기에 따라 마리당 20만∼30만 원에 일부 불법 음식점에 팔려나간다. 식당에서는 근거 없는 보신설을 맹신한 일부 계층에 고라니를 구입가의 2, 3배 가격에 다시 판매한다.
신승구(64) 남양주지회장은 “열흘 전 단속 나와 올무 30여 개를 수거했는데 오늘 또 20여 개가 발견될 만큼 겨울 밀렵이 기승을 부린다”고 말했다.
남양주시에서는 지난해 경기 북부 지역에서 가장 많은 445개의 밀렵도구가 수거됐다. 이 중 41개는 사람이 밟으면 혼자서는 빼기 어렵고 발목을 크게 다칠 수 있는 대형 덫이었다.
서식지 곳곳에 설치된 덫과 올무를 피한다고 해도 먹이가 부족해 동물들의 겨울나기는 힘겨워 보였다.
이날 오전 남양주시 화도읍 묵현리 천마산에서는 이중고를 겪고 있는 야생동물을 위한 밀렵 단속과 먹이주기 행사가 함께 열렸다. 하지만 행사 시작 10분 만에 이 산의 포식자 중 하나인 너구리와 다람쥐가 굶어 죽은 채 발견돼 참석자들의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도시와 인접한 이 산은 군립공원으로 지정돼 멧돼지, 고라니, 토끼, 족제비를 비롯해 빨간머리 딱따구리, 산까치, 꿩 등 다양한 동물이 살 정도로 생태 환경이 좋은 편이다.
남양주시 관계자는 “야생동물을 잡아 사고팔거나 먹지 않아야 한다는 시민의식이 자리 잡아야 밀렵의 뿌리가 뽑힐 것”이라며 “먹이주기 행사를 확대 실시해 동물들의 겨울나기에 힘을 보탤 계획”이라고 말했다.
남양주=이동영 기자 arg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