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부 “현행 법대로라면 7월부터 실직 위기
경제난에 정규직 전환 얼마나 되겠나”
노동계 “정부 해고자 수치 부풀려 위기감 조성
비정규직 차별 시정 근본대책 세워야”
지난해 외국계 항공사에 입사한 이모(26·여) 씨는 비정규직 근로자다.
그는 지난해 8월 노동부에 민원을 제기했다. 비정규직법 때문에 회사에서 2년짜리 계약서에 사인하라고 했기 때문이다.
이 씨는 “회사가 계약서에 더는 연장이 없다는 조항을 명시했다. 경력 2년과 4년은 나중에 구직과정에서 차이가 크기 때문에 단 2년 기간 연장만이라도 절실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비정규직 근로자의 사용기간 연장 문제가 정치 사회적인 핫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현행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보호에 관한 법률’은 2007년 7월 이후 계약한 기간제 근로자가 2년 이상 근무할 경우 정규직으로 전환하도록 하고 있다.
법대로라면 5인 이상 사업장은 올 7월부터 이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
문제는 경제난 때문에 기업들이 정규직 전환보다 해고를 통해 이를 피할 것이 분명하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정부는 사용기간을 연장(2년→4년)하기 위해 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비정규직으로 계속 근무하는 한이 있더라도 일단 해고는 피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노동계와 야당은 “미봉책에 불과하며 비정규직만 더욱 양산하는 개악”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 개정안 놓고 정부-노동계 대립
노동부는 7월 이후 기간 만료로 실직 대상이 될 기간제 근로자가 97만여 명에 이르기 때문에 기간 연장이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기업이 정규직 전환 대신 법을 핑계로 해고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른바 ‘제도적 실직’이다.
하지만 이 수는 다소 과장된 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노동부는 지난해 8월 조사(3월, 8월 두 차례 조사) 때 5인 이상 사업장에서 2년 이상 근무한 비정규직 근로자가 96만8000여 명이었기 때문에 올해도 비슷한 규모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이 수치는 이들이 당시부터 지금까지 단 한 명도 해고당하거나 이직하지 않았을 경우를 전제로 한다는 허점이 있다. 더구나 비정규직의 계약 시점이 다르기 때문에 해고도 동시가 아닌 약 1년 이상에 걸쳐 순차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노동계는 “7월 한 달에 기간이 만료되는 사람은 3만8000여 명에 불과하다”며 “정부가 수치를 부풀려 기간을 연장하려 한다”고 반박했다.
수치의 논란에도 불구하고 기업주가 해고를 선택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이상 기간 연장을 통해서라도 이를 막으려는 정부 노력은 일면 타당성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 ‘비정규직 보호’ 입법 취지 퇴색
비정규직 문제가 2006년 2월 법 통과 때 예견됐음에도 단기 처방에만 급급한 정부의 자세는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또 기간 연장으로 비정규직이 더 늘어나고 ‘비정규직 보호’라는 법 취지가 퇴색된다는 노동계 주장은 정부도 인정하고 있다.
문제는 현실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점이다. 법 취지를 살리기 위해 기간 연장을 안 하면 정규직 전환을 하는 소수 기업을 제외한 대부분의 비정규직들은 소리 없이 해고될 수밖에 없다.
비정규직 근로자 4명이 일하고 있는 금속 부품회사 이모(46) 대표는 “비정규직 사용기간이 늘어난다면 좀 어렵더라도 어떻게든 쓰겠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정규직으로까지 전환해서 쓸 수는 없다”며 “정규직으로 전환하면 고용보험, 학자금 등 부대비용으로 연봉의 절반 정도를 회사가 부담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민주노동당·민주노총 공동 설문조사에서 비정규직 근로자들도 문제 해결 방안을 ‘비정규직이라도 오래 일하는 것’(46.4%) ‘차별 해소’(34.5%) ‘정규직 전환’(16.7%) 순으로 답했다.
겉으로는 비정규직 보호를 주장하지만 ‘자기희생’이 없는 노조 태도도 문제 해결의 걸림돌이다.
비정규직의 열악한 처우는 정규직과의 비교에서 생기는 만큼 정규직 근로자로 구성된 노조가 비정규직을 배려하지 않는 한 제도에 의한 해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2007년 한국철도공사는 전년도 성과급을 정규직에게만 지급해 비정규직 근로자들로부터 지방노동위원회에 제소됐다. 성과급 차별 지급은 노조와의 합의로 이뤄졌다.
고용 위기에도 대부분의 노조에서 아직까지 정규직 임금 삭감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제안이 나오지 않는 것과 양대 노총이 해결책을 정부에 미룬 채 진정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것도 이 같은 배경 때문이다.
명지대 경영학과 이종훈 교수는 “기업은 계속 근로가 필요한 비정규직의 임금을 줄이는 대신 고용을 보장하고, 그렇지 못한 직종은 임금은 정규직 수준을 보장받되 고용 기간은 양보하는 식으로 유연하게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