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 이씨(花山 李氏)의 선조는 베트남 왕족이다. 1995년 화산 이씨 종친회가 베트남을 찾았을 때 베트남인들은 “맥이 끊겼던 왕족이 돌아왔다”며 크게 환대했다.
화산 이씨의 시조인 이용상(李龍祥)은 베트남 첫 독립국가인 리 왕조(1009∼1226) 왕자 신분이었는데 권력다툼 속 왕족 몰살의 난을 피해 보트를 타고 표류하다 고려 고종 때 서해안 황해도 옹진반도 화산에 도착했다.
골든브릿지 금융그룹의 이상준 회장도 바로 베트남계의 후손인 화산 이씨. 그는 “베트남 왕족 후예로서 양국을 잇는 다리가 되고 싶다”며 2005년 베트남에 한국 증권회사 중 최초로 현지법인을 설립했다. 2007년 베트남 당국은 그의 혈통을 공식 인정해 내국인 대우를 해주고 있다. 사회주의 국가인 베트남에서 외국인이 내국인 대우를 받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청해 이씨(靑海 李氏)의 선조도 이방인인 여진족 출신 이지란(李之蘭)이다. 그의 본명은 ‘쿠란투란티무르’다. 이성계를 도와 조선 건국의 공을 세웠다. 이성계와 형제의 의를 맺을 정도로 총애를 받았다.
이뿐 아니다. 인도 혈족도 있다. ‘가락국기’에 의하면 서기 48년 가야의 수로왕과 결혼한 허황옥은 인도 ‘아유타’국 출신이다. 아유타국은 갠지스 강에 있던 인도 전국시대의 도시국가이며 현재 ‘아요디아(Ayodhia)’로 바뀌었다.
단국대 교수 출신의 정수일 한국문명교류연구소장에 따르면 삼국시대부터 고려, 조선을 거치면서 수많은 외국인들이 한반도에 정착했고 결과적으로 우리나라 성씨 280여개 가운데 절반 정도가 귀화 성씨이다.
진양 강씨(晉陽 姜氏), 영양 남씨(英陽 南氏), 광주 노씨(光州 盧氏), 달성 하씨(達城 夏氏), 아산 호씨(牙山 胡氏), 양주 낭씨(楊州 浪氏) 등이 대표적인 중국계 귀화인의 성이다.
서양인의 혈족은 없을까. 조선시대 한반도에 표류해 온 네덜란드 출신 얀 야너스 벨테브레이(한국명 박연)는 조선 여인과 결혼해 1남 1녀를 두었다. 그의 후손에 대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지만 그들을 통해 네덜란드인의 피가 전해올 가능성은 높다.
우리가 단일민족을 강조하고 있지만 역사적으로 다양한 민족이 우리의 조상과 함께 살아왔음을 알 수 있다.
김현지 기자 nu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