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료 싸고 시설 좋아 한달치 예약 끝나
길 건너 아파트 단지에는 따뜻해 보이는 조명이 켜져 있었다.
추운 날씨 때문에 연방 입김이 나왔고, 외투를 걸쳤지만 가만히 서 있으면 손발이 시린 날씨였다.
하지만 운동복을 입은 마니아들은 반달과 대형 라이트가 비춰주는 인조잔디 구장에서 축구공을 차느라 땀을 흘리고 있었다.
움직임이 적은 골키퍼는 다른 선수들과 달리 두툼한 외투를 입은 모습이었다.
2일 오후 7시 경기 고양시 덕양구 성사동 별무리 인조구장에서 펼쳐진 ‘달밤 축구’의 모습이다.
최근 몇 년 새 수도권 자치단체들이 야간 조명시설을 갖춘 인조잔디 축구장을 잇달아 지으면서 한겨울 밤에도 축구 마니아들이 몰려들고 있다.
고양시에서 운영하는 중산, 충장, 백석, 대화 등 다른 축구장에서도 이날 모두 오후 11시까지 축구경기가 진행됐다.
이날 경기에 참가한 ‘秀 FC’ 박창주 회장은 “영하 10도라도 예약만 된다면 퇴근 후 축구를 한다”며 “이용료가 싸고 시설이 좋아 축구할 맛이 난다”고 말했다.
그는 “전직 영화배우, 언론인, 외판원, 자영업자 등 직업은 다양하지만 축구를 좋아한다는 공통점 때문에 ‘한겨울 달밤 축구’에 모인다”고 덧붙였다.
한 회원은 “올해 들어 경기가 안 좋아 생업에 종사할 시간이 줄어드니까 축구하러 오는 회원이 더 많아지는 것 같다”며 웃었다.
인조잔디를 깔면 천연잔디에 비해 관리를 거의 하지 않아도 되고 이처럼 한겨울에도 마음 놓고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용료도 고양시는 야간 4시간에 8만5000원을 받아 축구팀들이 크게 부담을 느끼지 않는 수준이다.
의정부시에도 곤재, 직동 등 2개 인조잔디 구장에서 오후 10시까지 축구 경기가 펼쳐지고 있다. 이 지역에는 170여 개 아마추어 팀이 운영되고 있는데 역시 한 달치 야간 경기 일정의 예약이 끝난 상태다.
파주시에도 금촌, 문산 등 4개 축구장에 인조잔디와 조명 시설이 갖춰져 야간 축구 마니아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수원시에는 영흥체육공원과 종합운동장 보조구장이 이런 시설을 갖추고 있다.
각 시에서는 한 팀에 이용권을 주고, 이 팀은 이용권을 얻지 못한 다른 팀을 초청해 번갈아 가며 경기하는 게 일반적이다. 예약이 어렵기 때문에 빚어지는 현상.
예약에 실패하고도 밤에 축구를 하려면 다른 팀의 초청을 받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거친 경기보다는 깔끔한 매너를 보여줘야 한다.
또 평일 밤에 모여 축구하고 늦게 끝나기 때문에 술자리로 이어지기보다는 곧바로 귀가하는 바람직한 문화가 만들어지는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
고양시 각 팀의 연합체인 ‘첫사랑 드림’의 임종국(47) 총무는 “잔디에서 좋은 매너로 경기하니 부상 우려 없이 야간에도 힘차게 운동할 수 있다”며 “조명 갖춘 인조축구장은 주민들 요구에 딱 맞는 시설”이라고 평가했다.
이동영 기자 arg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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