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용 내장재 세계시장 휩쓸어
이 기사를 읽는 독자가 지금 입고 있을지 모를 ‘패딩 점퍼’는 따듯하고 가벼우며 쿠션이 좋고 옷의 형태가 오래 유지되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과거에는 점퍼 내부 보온재의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는 기술이 없어 옷을 모눈종이처럼 재봉하거나(누비 점퍼) 냄새가 심하고 인체에 해로운 스프레이 본드를 뿌리기도 했다. 섬유와 섬유를 연결해 형태를 유지해 주는 ‘로멜팅(Low melting) 접착 섬유’(로멜팅 섬유)가 개발되면서 이런 고민은 사라졌다. 국내 최대의 폴리에스테르 기업 휴비스는 로멜팅 섬유로 패딩 점퍼를 넘어 자동차와 비행기 내장재까지 개발해 세계 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3일 찾은 대전 대덕구 휴비스 연구소는 더욱 높은 품질과 다양한 용도의 로멜팅 섬유를 개발하기 위해 연구에 땀을 쏟고 있었다.
▽‘섬유 산업의 반도체’ 로멜팅 섬유=로멜팅 섬유의 구조는 연필과 같은 형태다. 바깥(나무) 부분은 낮은 온도에서, 안쪽(흑연) 부분은 높은 온도에서 녹는다. 이 섬유로 만들어진 제품에 열을 가하면 바깥 부분의 섬유가 녹아 건축물의 철근처럼 섬유의 형태를 유지하게 된다.
휴비스 연구소의 박성윤 팀장은 “녹는 온도가 낮을수록 제품을 만드는 데 드는 에너지 비용이 줄어 다양한 용도의 제품을 생산할 수 있다”며 “일반 폴리에스테르 섬유의 녹는 온도가 섭씨 280도 이상인 반면 휴비스가 개발한 로멜팅 섬유는 100∼200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휴비스는 로멜팅 섬유의 시장을 의류용에서 산업용으로 확대했다. 특히 자동차와 항공기 등 모바일 제품의 인테리어 및 내장재 개발에 힘써 성공을 거뒀다.
정종호 팀장은 “천장재와 도어트림, 헤드라인 등 자동차의 경우 15가지 부품에 섬유가 쓰이고 있지만 대부분 화학 본드로 형태를 유지하고 있어 냄새가 심하고 인체에도 해롭다”며 “유럽과 미국, 일본과 같이 환경 규제가 심한 나라를 겨냥하면 승산이 있을 것으로 보았다”고 말했다.
▽선발주자인 일본 넘어 세계 시장 석권=로멜팅 섬유는 1980년대 중반 일본의 섬유회사인 유니티카가 개발했다. 하지만 1989년 이 시장에 뛰어든 휴비스는 기존 제품을 벤치마킹하는 한편 1997년 대량 생산 방식을 개발해 선두 주자로 나섰다.
늘어나는 주문량을 감당하기 위해 섬유의 칩을 제작한 뒤 다시 칩을 녹여 제품을 생산하던 방식에서 원료에서 원사를 바로 생산하는 방식으로 바꿨다. 이는 대량 생산을 가능하게 하고 가격경쟁력을 높여줬다. 그 결과 휴비스는 전 세계 로멜팅 섬유 시장(1조 원)의 40%를 차지하면서 생산량의 90%를 108개국으로 수출해 이 업계 세계 1위로 부상했다. 2001년 지식경제부가 뽑은 세계일류상품 중 시장 점유율 1위 품목에도 당당히 이름이 올랐다.
김성희 연구소장은 “로멜팅 섬유의 용도가 계속 확대될 것이라고 판단하고 선발주자의 제품과 차별화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연구개발에 투자하고 용도를 개발하며 수요에 순발력 있게 대처한 결과”라고 말했다.
휴비스는 폴리에스테르 산업을 선도해 온 SK케미칼과 삼양사가 두 회사의 섬유 부문을 통합해 세운 화학섬유 전문기업이다. 로멜팅 섬유 외에도 부직포용 소재, 충진재, 위생재 등을 생산해 연간 1조 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본사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 공장은 전주, 울산, 중국 쓰촨(四川)에 있으며 연구소는 2004년 대전으로 이전했다.
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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