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코패스에겐 ‘살인 본성’ 있나

  • 입력 2009년 2월 6일 02시 58분


‘진화론’의 시각으로 본 살인범죄

《경기 서남부지역 연쇄살인사건 피의자 강호순 씨. 그의 범죄 행각이 속속 드러나고 있지만 그가 살인자가 된 계기나 범행 동기는 뚜렷하지 않다. ‘전형적인 사이코패스’라는 분석만 나왔다. 그렇다면 사이코패스에겐 ‘살인 본성’이 있는 걸까, 아니면 인간 집단의 ‘돌연변이’일까. 200년 전 태어난 다윈과 그가 주창한 진화론의 눈으로 사이코패스를 들여다봤다.》

1 살인 본성

살인충동 막는 심리적 기제 함께 진화

150년 전 ‘종의 기원’을 펴낸 찰스 다윈도 ‘살인 본성’ 문제를 고민했다. 자연계에서는 이런 끔찍한 살해가 종종 일어난다는 사실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가령 맵시벌은 자신의 몸 안에 알을 낳고, 알에서 깬 새끼들은 어미의 몸을 뜯어먹고 자란다. ‘자식에 의한 부모 살해’가 맵시벌 사회에서는 일종의 ‘자연법칙’인 셈이다.

저명한 진화심리학자인 미국 텍사스대 심리학과 데이비드 버스 교수는 그의 책 ‘이웃집 살인마’에서 “살인 충동은 인간 진화의 결과”라고 주장했다. ‘살인은 인간의 마음에 내재된 본성’이라는 것이다.

버스 교수는 전 세계 5000명이 넘는 사람에게 ‘누군가를 살해할 생각을 한 적이 있느냐’고 질문한 결과 남성의 91%, 여성의 84%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이로부터 살인은 정신병자 같은 이상한 사람들이 아니라 아주 평범한 사람들이 저지른다고 그는 주장했다. 다만 살인을 방지하는 심리적 기제가 함께 진화했기 때문에 실제로는 살인율이 낮게 유지될 뿐이다.

2 착취 전략

협력 가장한 뒤 속여 … “일종의 돌연변이”

사이코패스가 ‘무임 승차자 전략’을 쓴다는 진화적인 설명도 있다. 미국 세인트베네딕트칼리지 심리학과 린다 밀리 교수는 1995년 ‘행동과 뇌과학’이라는 학술지에 “사이코패스는 전형적으로 협력을 가장한 다음 상대를 속인다”며 “타인의 호혜적 메커니즘을 착취하는 전략을 사용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전략은 진화적으로 언뜻 자손의 번식에 유리해 보인다. 사이코패스는 일반인보다 더 많은 여성과 관계를 맺고 아내와 이혼하는 경향이 높은데 이러한 성 전략은 자손의 수를 늘리는 데 유리할 수 있다는 해석이다.

그렇다면 ‘유리해 보이는’ 전략을 사용하는데도 세상이 사이코패스로 넘쳐나지 않는 이유는 뭘까. 진화심리학자인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전중환 박사는 “사이코패스는 일종의 ‘돌연변이’이기 때문에 집단에서 수가 적을 수밖에 없다”며 “살인을 즐기는 사이코패스는 집단에서 쫓겨날 위험도 크기 때문에 진화적으로 불리한 면도 많다”고 설명했다.

3 대뇌 이상

‘윤리회로’에 결함… 감정기복 거의 없어

신경과학자들은 사이코패스의 뇌에 주목한다. 혹시 사이코패스의 뇌에 ‘살인 회로’가 있는 것은 아닐까.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심리학과 안드레아 글렌 교수팀은 기능성자기공명영상(fMRI) 장치로 사이코패스 17명의 뇌를 촬영한 결과 대뇌에서 도덕적 판단과 감정을 조절하는 부위인 편도의 활성이 크게 떨어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연구팀이 ‘테러리스트를 피해 숨어 있는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서 우는 아기를 달랠 것인가’ 같은 도덕적 판단을 요구하는 질문을 던지자 사이코패스의 편도 활성도가 크게 감소한 것. 이 결과는 과학학술지 ‘분자정신의학’ 1월호에 게재됐다.

글렌 교수는 “사이코패스의 뇌는 ‘윤리 회로’에 결함이 있다”며 “특히 사이코패스 테스트로 불리는 PCL-R의 점수가 높을수록 편도의 활성도가 현저히 떨어졌다”고 밝혔다.

건국대 의대 신경정신과 하지현 교수는 “사이코패스는 웬만한 일에는 놀라지도 않고 감정의 기복이 거의 없어 살인 같은 극단적인 행동에 탐닉한다”고 말했다.

이현경 동아사이언스 기자 unesay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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