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서울 성동구 경일초등학교는 교사와 학교장, 학부모 간 갈등으로 시끄러웠다.
학부모들은 “교사들이 보건휴가를 너무 자주 쓴다. 교장은 추진력이 부족하다”고 비판했다. 학교운영위원회는 고성으로 끝나기 일쑤였다.
학부모들이 “외부에서 교장을 초빙하자”고 주장했지만 교사 68%가 반대했다.
결국 학운위 찬반 투표를 거쳐 윤기정(59) 당시 서울 동의초교 교감을 초빙하기로 결정했다.
윤 교장은 막상 이 학교 교장으로 오려니 고민이 앞섰다.
“장학사에게서 평가 자료조차 만들지 못할 만큼 학교 상황이 좋지 않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만둘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러나 윤 교장은 학부모들의 끈질긴 설득에 마음을 굳혔다. 학부모들 중엔 경일초교 인근의 경동초교 재직 시절 가르친 제자들도 있었다. 제자들이 찾아와 “우리 아이들을 맡아 달라”고 부탁했다.
윤 교장은 우선 교사들의 반대로 없어진 운동회부터 되살리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시장을 돌며 나무, 볏짚을 사 모아 직접 차전놀이에 쓰이는 동채를 만들었다.
시큰둥하던 교사들도 하나둘씩 돕기 시작했다. 학부모들도 나섰다.
운동회에 온 한 할아버지는 “생전에 다시는 이런 운동회를 못 볼 줄 알았다”며 쌈짓돈을 건네기도 했다.
힘을 모아 함께 운동회를 치르고 나자 교장과 교사, 학부모 사이엔 전에 없던 ‘일체감’이 형성됐다.
윤 교장은 “무엇보다 신뢰회복이 급선무라고 생각했다”며 “내가 먼저 학교를 변화시키려는 행동을 보여주면 선생님들도 믿어줄 것이라고 확신했다”고 말했다.
그는 학교를 변화시키는 일이라면 누구라도 찾아갔다. 관할 교육청, 행정구청, 사회단체, 대학은 물론 주변 학교 교장도 찾아가 자문도 하고 재정지원도 요청했다. 매주 수요일 학부모들이 학교에서 자녀와 함께 책 읽는 시간을 갖도록 했고, 주말농장도 만들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정말 잘 오셨다”고 하는 교사들이 늘었다. 늦게 퇴근하는 교사들도 늘었다. 윤 교장은 “교사가 힘들어야 학생이 행복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라고 말했다.
부임 이듬해인 2006년 경일초교는 ‘학교 경영 부문 우수학교’로 선정됐고, 지난해에는 정보통신기술(ICT), 수련활동 등 2개 분야에서 서울시교육감상을 탔다.
학부모 김만순(42·여) 씨는 “지금 중학생인 큰애도 이 학교에 다녔는데 요즘은 그때와 딴판이 됐다”고 말했다.
학교를 떠난 선생님들은 매년 9월 ‘교사 홈커밍 데이’에 학교를 찾아 학교발전 아이디어를 내놓는다. 지금은 초빙교장 찬성 비율이 90%에 가깝다.
그는 이번 학기에 임기가 끝난다. 학부모, 교사들은 계속 학교를 맡아달라고 부탁했지만 그는 “새로운 학교에서 봉사하고 싶다”며 고사했다. 경일초교는 후임도 초빙교장을 모시기로 했다.
교육여건 개선을 희망하는 학교를 대상으로 1998년 시범 도입된 초빙교장제는 2005년 경일초교를 비롯해 서울시내 5개 초등학교에 초빙교장이 부임하면서 활성화됐다. 서울시내 578개 초등학교 중 초빙교장제를 선택한 학교는 올해 51개교에 이른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