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 망루 전체 순식간에 불바다”
시너 붓고 화염병 던진 사람 신원은 못 밝혀
용역 직원 소화전 사용도 처벌 법규 없어
농성자 변호인단 “국민참여재판 신청 계획”
지난달 20일 서울 용산 철거민 화재 참사 발생 직후 20일 동안 화재 원인 등을 수사해온 서울중앙지검 수사본부가 ‘점거 농성자 21명 기소, 경찰 무혐의’로 결론을 내렸다.
이례적인 고검장 회의 소집, 수사결과 발표 연기 등 우여곡절을 거친 끝에 검찰은 9일 오전 기자회견을 열어 이 같은 수사결과를 발표한다.
▽경찰 형사처벌 어려워=화재 참사가 난 지난달 20일 경찰특공대 투입이 과잉진압이라는 논란이 일었지만, 검찰은 경찰을 형사처벌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진압과정에서 폭행 등 불법행위가 없었고, 작전과정에서 안전조치를 소홀히 한 사실이 일부 드러났지만 이는 화재 참사와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없어 업무상 과실치사죄를 적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농성 시작 하루 만에 경찰특공대를 투입한 경찰 지휘부의 판단도 부당하지 않다고 봤다.
수사결과 발표를 통해 경찰 측에 행정적 또는 민사상의 책임을 질 수도 있는 일부 잘못이 있다는 점을 밝히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이 역시 발표하지 않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준(準)사법기관인 검찰이 수사결과 발표 이후에 예상되는 야당과 시민단체 측의 비판 등을 의식해 형사처벌할 수 없는 내용을 공개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법적으로는 문제가 되지 않는 경찰의 과실을 공개 거론하는 것이 ‘잘못이 있는데도 처벌하지 않았다’는 식으로 왜곡될 수 있다는 점도 고려됐다.
▽용역업체 직원 소화전 사용도 처벌할 수 없어=검찰은 재개발 철거 용역업체 직원이 화재 참사 전날인 지난달 19일 남일당빌딩 옆 건물 옥상에서 물을 뿌린 데 대해서도 경찰에 법적 책임을 묻지 않기로 했다.
검찰은 용역업체 직원과 경찰 사이에 진술이 엇갈리자 8일까지 관련자 소환조사를 계속하면서 적용 법규를 검토했다.
그러나 용역업체 직원이 철거민의 망루 설치를 방해하기 위해 소화전을 사용한 것이 이번 화재 참사와 직접 관련이 없는 데다 마땅히 적용할 만한 법규가 없다는 것이 검찰의 판단이다.
반면에 검찰은 점거농성에 참여한 25명 중 21명에 대해선 명백한 불법행위가 인정돼 기소 방침을 세웠다. 이에 농성자 측 변호인단은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하기로 했다. 변호인단의 한 변호사는 8일 “수사의 공정성에 대한 논란이 있는 만큼 국민참여재판을 통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법정에서 가려보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농성자가 던진 화염병 때문 화재=검찰은 농성자 중 한 명이 농성 중이던 망루 4층에서 시너를 부었으며, 이 시너가 망루의 철골 등을 타고 아래층으로 흘러내린 것으로 판단했다.
경찰이 망루 3층에서 끝까지 저항하던 14명의 농성자를 검거하기 위해 재진입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농성자 중 누군가가 던진 화염병 때문에 망루 3층 바닥에 있던 시너에 불이 붙었다는 것. 불길은 순간적으로 철골을 타고 수직 수평으로 확산되며 망루 전체가 불길에 휩싸였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검찰은 동영상을 분석해 시너를 부은 것으로 추정되는 농성자의 모습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농성자들이 복면을 썼고, 동영상의 상태가 좋지 않아 정확한 신원은 확인하지 못했다.
전성철 기자 daw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