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구경 거리 고작 30m… 간큰 창녕군

  • 입력 2009년 2월 11일 02시 57분


火魔가 휩쓸고 간 화왕산정월대보름 맞이 억새태우기 행사 때 큰불이 나 시뻘건 화염으로 뒤덮였던 경남 창녕군 화왕산 정상 일대가 10일 새카만 들판으로 변해 있다. 헬리콥터가 착륙해 있는 곳의 바로 뒤편이 4명의 사망자와 다수의 부상자 등 인명 피해가 집중된 배바우 부근이다. 창녕=연합뉴스
火魔가 휩쓸고 간 화왕산
정월대보름 맞이 억새태우기 행사 때 큰불이 나 시뻘건 화염으로 뒤덮였던 경남 창녕군 화왕산 정상 일대가 10일 새카만 들판으로 변해 있다. 헬리콥터가 착륙해 있는 곳의 바로 뒤편이 4명의 사망자와 다수의 부상자 등 인명 피해가 집중된 배바우 부근이다. 창녕=연합뉴스
■ 화왕산 참사 ‘예고된 인재’

지자체 축제 치르기 급급… 안전엔 소홀

가뭄-강풍 등 고려해 방화선 확보했어야

창녕군수 “억새 태우기 행사 폐지하겠다”

경남 창녕군 화왕산 억새태우기 축제 화재는 예견된 참사일 뿐 아니라 준비 소홀이 빚은 인재(人災)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극심한 가뭄과 산 정상의 불규칙한 바람, 큰 불의 ‘성질’에 대한 검토가 미흡했고 안전요원이 충분히 배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허술한 준비=9일 오후 화왕산 정상에는 1만5000명 이상이 몰렸지만 방화선의 폭이 30m 안팎에 그쳤고 안전요원도 모자랐다.

창녕군은 “폭 30∼50m의 방화선을 구축했으며, 공무원과 의용소방대원 등 350명을 안전요원으로 배치했다”고 밝혔으나 경남경찰청 ‘경비 대책’ 자료에 따르면 경찰과 행정, 소방요원 등 114명만 현장에 배치하는 것으로 돼 있다.

특히 창녕지역은 지난해 9월 이후 이달 초까지 강수량이 59mm로 평년의 14%에 불과할 정도로 산과 들이 바짝 마른 상태였다.

그런데도 창녕군은 “산림청으로부터 ‘불놀이’ 허가를 받았다”고 밝히고 있다. 산림자원의 조성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은 산림 100m 안에서 불을 놓으려면 관할 시장, 군수의 허가를 받아야 하고 화왕산처럼 국유림은 산림청 허가사항이다.

기상청은 “넓은 지역에 일시에 불을 붙이면 공기가 데워져 상승기류가 발생하고, 주변 공기가 몰려들면서 돌풍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사고 당시 해발 757m인 화왕산 정상은 평지에 비해 바람이 강했고, 축구장 20개 크기인 화왕산 억새밭에 일시에 불을 놓으면서 순간적으로 폭풍이 발생했던 것으로 보인다.

창녕경찰서는 창녕군 공무원을 상대로 △방화선의 적정성 △방화선의 관리 △안전요원 배치 등을 조사한 뒤 관리에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나면 업무상 중과실치사상 혐의로 입건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경찰은 10일 이번 사고의 사망자를 김길자(66·여·경남 김해시), 박노임(42·여·전남 광양시), 백계현(55·교사), 윤순달(35·여·창녕군청 직원) 씨 등 4명으로 발표했다.

현장 수색에서 추가 희생자는 없었으나 불길이 덮칠 당시 전신화상을 입은 6명이 중태여서 사망자가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부상자 63명 가운데 28명은 치료를 받고 귀가했으며 29명은 입원 중이다.

▽지자체 축제, 안전 불감증?=이번 사건을 계기로 지방자치단체의 허술한 안전의식이 다시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1995년 지방자치제가 전면 도입된 이후 일부 축제는 내실보다 단체장과 지방의원 치적 알리기 행사로 변질되는 등 많은 문제점을 드러냈다.

지난해 전국에서 열린 축제는 1176개로 지방자치제 도입 전인 1994년 287개보다 4배 가까이 늘었다.

4명이 숨지고 60여 명이 다친 화왕산 억새태우기 축제 역시 1995년 규모를 키웠다.

서귀포시장 등 5명의 목숨을 앗아간 제주 방어축제와 11명이 압사한 경북 상주자전거 축제 참사 등의 사고 원인이 ‘안전 불감증’으로 지목됐지만 크게 변한 것은 없다.

감사원 감사 결과 2003년 신설된 전국 496개 축제 가운데 226개는 타당성 검토조차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자치단체들이 대부분의 축제를 관련 단체나 이벤트회사에 맡겨 엄격한 관리 감독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경남의 한 자치단체장은 “합법적으로 유권자에게 얼굴을 내밀 수 있는 축제를 쉽게 정리하기 어렵다”고 털어놨다.

창녕군은 10일 화왕산 억새태우기 행사를 폐지하기로 했다.

창녕=강정훈 기자 manman@donga.com

윤희각 기자 toto@donga.com


▲노선자 동아닷컴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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