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금하러 간 식당 폐업… 매출 예전같지 않아”
“사장님, 예전에 계시던 직원 분은 이제 안 계신가 봐요?”
“어유, 음식 장사해서 사람 월급도 주기 힘든데 직원 수부터 줄여야지 별수 있어요.”
최근 화장품 방문판매사원들이 ‘거래처’에서 자주 맞닥뜨리는 상황이다.
올해 화장품 방문판매 경력 10년차인 LG생활건강 서울 당산중앙지사 이민주(51·여) 씨의 영업현장은 서울 강서구 영등포구 양천구 일대 시장과 식당가. 멀게는 경기 고양시 행주산성까지 포함된다. 기자는 5일 오전 9시∼오후 6시, 10일 오후 2∼6시 이 씨와 동행하며 서민경제의 현주소를 체감해봤다.
○ 멸치의 경제학
10일 오후 이 씨의 발길이 향한 곳은 영등포구 영등포3동 식당가에 있는 ‘문성숯불갈비’. 이 씨가 10년 전 방문판매를 시작할 때부터 거래했고 지금도 매주 빼놓지 않고 들르는 곳이다.
이 식당을 운영하는 김영자(53·여) 씨는 손님이 없어 한숨 돌릴 때였지만 이 씨가 내놓는 화장품에 쉽게 눈길을 주지 못했다. 김 씨는 “요새 식당 매출이 절반으로 줄어 화장품을 사려고 해도 수십 번은 망설이게 된다”고 말했다.
14년째 같은 장소에서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는 김 씨는 재료값이 올라도 그나마 단골들 발길이 끊길까 봐 갈비탕과 설렁탕 값은 3년째 5000원을 유지하고 있다.
김 씨는 “손님이 뜸해 매일매일 도매시장에 나가 그날 장사할 재료를 구입하는 일과도 이제 거를 때가 많다”고 한숨을 쉬었다.
이에 앞서 이 씨는 5일 오후 3시경 강서구 외발산동에 있는 수협유통센터를 찾았다. 가격이 싸서 인근 주민은 물론 경기 김포시에 사는 이들도 자주 찾는 곳이다.
저녁 찬거리를 사러 나온 주부들로 붐벼야 할 시간이었지만 손님보다 상인이 더 많이 눈에 띄었다.
이곳에서 십수 년째 건어물가게를 운영하는 조선희 씨는 “값이 싸면서 오래 먹을 수 있는 멸치만 주로 팔린다”면서 “전체 매출은 예년의 절반을 약간 웃도는 정도”라고 하소연했다.
○ 불황에는 립스틱이 잘 팔린다?
요즘 화장품 방문판매사원들은 아파트단지나 일반 주택가를 별로 찾아다니지 않는다. 전업 주부들이 허리띠를 있는 대로 졸라매고 있어서 화장품을 잘 안 사기 때문이다.
그 대신 이 씨 등이 주로 공략하는 곳은 시장이나 유흥가 등 경제활동을 하는 여성들이 있는 곳이다. 이들은 아무리 어려워도 화장을 한다는 것이 이 씨의 설명이다.
불황으로 일하는 여성이 늘면서 시장과 유흥가에서의 매출은 오히려 증가하는 추세다. 이 대리점 방현철 사장에 따르면 최근 2, 3개월 사이 월 매출이 20∼30%씩 늘고 있다고 한다.
‘불황에는 립스틱이 잘 팔린다’는 화장품 업계의 통설이 들어맞는 셈이다.
불황기에는 또한 앉아서 파는 일반 판매보다 잠재적 소비자를 찾아다니며 바닥을 샅샅이 훑는 방문 판매가 위력을 발휘한다고 한다.
아모레퍼시픽, 코리아나 등 화장품업계에서 10%대에 불과했던 방문판매 유통채널 비율이 30%대로 훌쩍 뛴 것은 1998년 외환위기 직후였다.
한편 경기가 어렵다 보니 화장품 방문판매사원으로 나서는 여성도 늘고 있다. 이 씨가 일하는 대리점만 해도 지난달 신규 직원 6명이 채용됐다.
영등포구 당산동의 한 설렁탕집에서 기자와 함께 늦은 점심식사를 한 이 씨는 음식점을 나오며 “식당에서 서빙을 하는 아줌마들이 화장을 곱게 했던데 다음번에는 제품을 들고 와야겠다”며 환하게 웃었다.
정효진 기자 wisewe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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