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자 1명 검거 1명 도주… 위조지폐 회수 못해
11일 오후 8시 서울 구로구 오류동의 한 모텔. 샤워를 마친 두 인질납치범은 축배를 들었다.
2년 전 교도소에서 만나 “사회에 나가면 같이 한 건 하자”며 친분을 다져왔던 심모 씨(28)와 정모 씨(32)는 비닐봉지 안에 든 7000만 원의 돈뭉치를 앞에 두고 캔맥주를 들이켰다.
이들은 10일 오후 11시 40분경 서울 강서구 내발산동의 한 제과점에 들어가 여주인 박모 씨(39·여)를 승용차로 납치한 뒤 남편 유모 씨를 협박해 ‘7000만 원’을 받아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 돈이 경찰이 미끼로 던진 가짜 지폐라는 사실을 몰랐던 두 범인은 경찰의 무능을 한껏 비웃었다. 서울 마포구 성산대교 밑에서 돈가방을 받은 뒤 경찰이 추적해 왔지만 길거리 한복판에서 보기 좋게 따돌렸다.
돈가방에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이 부착돼 있을 것도 예상하고 돈을 비닐봉지에 담은 뒤 가방에 넣어오라고 요구했다. 범인들은 돈을 건네받으면서 가방은 버리고 돈이 담긴 봉지만 꺼내가 경찰이 부착한 GPS를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그러나 완전범죄의 꿈은 오래가지 않았다. 범인들은 봉지 안의 1만 원권 지폐가 진짜와 크기 색깔이 다른 가짜 지폐라는 것을 확인하고 크게 실망했다. 납치했던 제과점 여주인은 이미 2시간 전에 풀어줬다.
내리막길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심 씨는 13일 오후 11시 반경 자신이 사는 서울 금천구 가산동의 한 고시원으로 돌아가다 잠복해 있던 경찰에 붙잡혔다.
수사망을 피하기 위해 서울 출신이면서도 전라도와 경상도 사투리를 번갈아 쓰고 예행연습까지 했지만 심 씨 일당은 결정적 실수를 저질렀다.
심 씨는 납치를 위해 훔친 체어맨 승용차가 도난차량이라는 사실이 발각되지 않도록 자기 소유의 프라이드 번호판을 떼어다 체어맨에 달았다. 이 때문에 가짜 지폐와 GPS까지 동원했지만 번번이 허탕을 쳤던 경찰은 만회의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경찰은 접선 장소와 도주 경로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를 통해 용의자의 것으로 추정되는 체어맨 승용차의 번호판을 확인한 뒤 차량 1만1280대의 소유자를 분석해 프라이드 주인 심 씨를 용의자로 지목했다. 연쇄살인 피의자 강호순을 검거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CCTV의 위력이 다시 한 번 확인된 것이다.
서울 양천경찰서는 15일 심 씨를 인질강도 혐의로 구속하고 가짜 지폐 7000만 원을 챙겨 달아난 공범 정 씨를 수배했다.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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