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목적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경제학 교과서의 공통된 답은 ‘이윤 추구’(보다 구체적으로는 ‘이윤 극대화 추구’)이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기업은 재화와 용역을 생산·공급하고, 그 대가로 이윤을 얻는 주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가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다. 이번 주제에서는 기업의 목적을 둘러싼 논쟁을 통해 이윤 추구와 사회적 책임은 정말 양립할 수 없는 것인지 생각해 보고자 한다.
○ 생각의 시작
『과거의 기업은 단순히 이윤을 극대화하는 데에만 관심을 기울였고 또 그러한 기업의 행동에 아무런 사회적 제약도 가해지지 않았다. 기업이 이윤을 극대화하는 경제적 역할은 곧바로 사회의 발전으로 귀결된다는 소박한 믿음이었다.
[고등학교 경제 교과서]』
이러한 주장에는 사회적 책임이 존재할 여지가 없다. 그런데 이 소박한 믿음은 단지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현재에도 ‘강력한 믿음’으로 살아 있다. 신자유주의의 대표자인 프리드먼의 주장은 이를 웅변하고 있다.
『기업에 사회적 책임이 있다는 말은 도대체 무슨 말인가? 사람만이 책임을 질 수 있다. 기업이란 인위적 사람(즉, 법인)이고 그래서 인위적 책임이 있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결코 기업 자체가 책임을 질 수 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중략) 자유 사회에서 기업의 유일한 책임은 속이지 않고, 공개적인 자유 경쟁의 규칙 속에서 이익을 가장 많이 올리도록 기업의 자원을 활용하고,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다.
[밀턴 프리드만,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이익을 올리는 것이다’]』
○ 뒤집어 보자
『기업의 이윤 극대화가 환경 파괴, 다른 집단의 피해와 위험, 경제적 불평등과 같은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 드러나면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성이 강조되기 시작하였다. 기업은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주주, 근로자, 소비자, 정부, 지역 사회, 다른 기업, 자연 환경 등 여러 이해 관계자들의 직?간접적인 도움과 영향을 받아 생산 활동과 이윤 추구 활동을 영위하고 있다. [고등학교 경제 교과서]』
과연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없는 것인가? 반론 역시 만만치 않다. 반론의 근거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역사적으로 볼 때, 사회적 목적을 망각한 기업의 행태는 시장실패라는 파국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대공황이 바로 그것이며, 최근의 미국발 금융 위기는 그 현대판이라 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기업 역시 사회적 존재라는 것이다. 기업의 생산 활동은 수많은 타인들과 국가 나아가 자연 환경을 떠나서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이윤의 원천은 엄밀하게 기업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 관계 맺고 있는 사회와 그 구성원들에게 있는 것이다.
○ 한 번 더 뒤집어 보자
『사회적 기업은 ‘사회적’이라는 단어와 ‘기업’이라는 단어로 이루어진 합성어로, 유료로 재화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제 활동을 하는 조직(‘기업’의 특성)이지만, 규범적 측면에서 보자면 공익적인 성격이 강하고 개인의 창의성 이상으로 집단의 연대성이 중요한 기능 원칙이 되는(‘사회적’의 의미)기업을 말한다.
[박찬임, ‘사회적 기업 창출 및 육성을 위한 과제’, 노동연구원]』
‘사회적 기업’은 국가 기업(공기업)과 사기업 사이에 존재하며, 이윤 창출과 사회적 역할을 조화시키고, 기업 구성원들의 자율성과 참여를 극대화함으로써 기업과 사회의 민주주의 심화에 기여하는 대안적 기업 형태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반 기업·반 부자 정서가 팽배해 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기업들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현실에서 ‘사회적 기업’은 기업의 목적, 이윤의 원천, 이윤 추구와 사회적 책임의 양립 가능성, 이윤의 배분, 기업 민주주의 등을 성찰하는 계기를 제공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사회적 기업’은 사회적 책임 존재 여부를 둘러싼 논쟁을 한 차원 업그레이드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강창선 청솔 아우름 통합논술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