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육 혁명
(박제균 앵커) 최근 공개된 서울대 고교별 합격인원에서 지방의 한 일반고등학교가 16명이나 되는 합격자를 배출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서울의 한 전문계 고등학교 미술반 학생 18명 중 17명은 학원이 아닌 학교에서 배운 실력으로 홍익대 미대 등 4년제 대학에 합격했습니다.
(김현수 앵커) 이런 성공사례는 사교육비를 걱정해야 하는 학부모들 입장에서는 여간 반가운 소식이 아닐 텐데요, 교육생활부 허진석 기자가 나와 있습니다. 허 기자, 우선 화제가 되고 있는 학교들의 성과부터 구체적으로 소개를 좀 해 주시죠.
(허진석) 네, 충북 청주에 있는 세광고등학교를 다녀왔습니다. 이 학교는 올해 비수도권 일반고 중에서 서울대에 가장 많은 합격자를 배출했습니다. 3학년 정원이 10학급 350명인 시골학교에서 16명을 합격시킨 것입니다. 수도권 일반고 중에는 서울 휘문고가 21명을 합격시켰는데, 휘문고의 3학년은 16학급입니다. 3학년 정원대비 합격률로 보면 세광고가 더 높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일부 중복된 인원이 있기는 하지만 전국 의대와 치대, 한의대에 38명을 합격시켰고, 연세대에 35명, 고려대에도 33명을 합격시켰습니다. 미국 듀크대 1명, 일본공대국비유학생 5명 등 외국으로 직접 진출하는 학생도 있습니다.
(박 앵커) 세광고의 실적을 보면 마치 외국어고나 과학고 같은 특수목적고등학교의 진학 성적 같은데요, 학생들이 어떻게 공부하기에 이런 탁월한 진학 성적이 나왔을까요?
(허진석) 비결은 학교에서 방과 후에 실시한 수준별 심화학습 프로그램에 있었습니다. 이 학교에서 '야간학교'라 불리는 방과 후 프로그램은 '한빛학사반'과 '심화반'으로 구성돼 있었는데요, 실력 있는 아이들의 학습 욕구를 충족시켜 주기 위해 1990년도부터 실시한 것입니다. 학교는 학년별로 최고 실력을 가진 40명을 뽑아 한빛학사반을 꾸렸습니다. 학사반 학생들은 학교에서 숙식을 모두 해결하며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심화반은 30명으로 구성되는데 학교에서 숙식을 하는 것을 제외하면 학사반과 비슷합니다. 학교의 노력으로 학생들은 학원에 갈 필요도, 시간도 없어 보였습니다.
(인터뷰) 김시용 / 세광고 교장
선생님들의 열정적인 교육철학, 학생들이 부응해주는 학습 분위기가 우리학교에 들어와서 스스로 자극을 받아서 열심히 하는 분위기 속에 최선을 다한 결과가 아닐까 합니다.
(김 앵커)이화여대 병설 미디어고도 공교육만으로 입시에서 좋은 성과를 냈다고 하던데요?
(허진석) 네, 서울 중랑구 망우동에 있는 이화여대 병설 미디어고에서는 미술반 학생 대부분이 미대에 합격했습니다. 학생들이 학원도 다니지 않았다는 점과 미디어고가 옛 실업계 고등학교인 것을 감안하면 놀라운 성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미디어고에서도 방과 후 학습 프로그램이 주효했습니다. 3년 전 전근을 온 임경묵 선생님이 미술에 소질과 적성을 가진 미술반 학생들이 재능을 썩히는 것이 안타까워 별도의 방과후 프로그램을 만들었습니다.
미대로 진학하려면 한달에 50-60만원 씩을 들여 학원을 다니는 것이 관행처럼 돼 있는 것이 현실이지만 여기에 과감히 도전을 한 것입니다. 임 선생님은 학생들 입시에 필요한 전문적인 지식을 보충하기 위해 홍익대 앞 학원가를 찾아가 입시노하우를 배워오기도 했습니다.
(박 앵커) 입시경쟁이 치열해지다보면 학생들끼리 사이가 나빠지고, 학교 분위기도 좋지 않을 것이라는 염려도 있지 않습니까? 면학 분위기는 어떻던가요?
(허진석 기자) 세광고에서는 학사반과 심화반에 들어간 학생들이 서로가 서로를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이번 2009학년 입시에서 서울대 전기·컴퓨터 공학부에 합격한 이진오 군의 얘기를 직접 들어보시죠.
(인터뷰) 이진오 세광고 3학년/서울대 전기컴퓨터 공학부 합격
학사반이 있다는 게 학생들 사이에서 위화감을 조성하는 게 아니라 선의의 경쟁체제를 이루어서 더 좋은 긍정적인 효과를 내는 것 같습니다.
미디어고도 비슷한 분위기였습니다. 작년 10월 초 미술반 중 처음으로 대학에 합격한 학생이 합격 후에도 매일 학교에 나와 친구들 뒷바라지를 했습니다. 그러자 그 뒤에도 합격 통지서를 받은 친구들이 학교에 나와 연필을 깎아주고, 물감도 개어주면서 도와주었습니다.
(김 앵커)아무래도 교장 선생님을 비롯한 교사들의 보이지 않는 수고가 많았을 것 같은데요?
(허진석)네, 맞습니다. 세광고의 경우 세광고 출신 교사들이 중심이 돼 '후배들을 제대로 한번 키워보자'고 1989년에 의기투합했습니다. 지금도 7명의 사감 교사들은 매주 1번씩 야간 당번을 맡는 수고를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유명 강사를 섭외하기 위해 대학교수와 학원 강사를 찾아가는 일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미디어고에서도 임경묵 선생님을 비롯한 동료 미술 교사들이 퇴근 시간을 미뤄가며 가며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박 앵커)두 학교 같은 학교가 점점 늘어나서 사교육이 걱정이 없는 사회가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허 기자, 수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