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러기아빠 ‘환율 한숨’ 더 깊어진다

  • 입력 2009년 2월 17일 19시 18분


'기러기 아빠'인 은행원 이 모(46) 씨는 17일 컴퓨터 모니터로 환율의 움직임을 보다가 또 한번 한숨을 내쉬었다.

미국에 유학중인 아들의 집세 및 생활비로 매달 2000달러를 보내던 이씨는 지난해 말 환율이 급등한 뒤로 전문가들의 예측을 믿고 송금액을 줄이고 송금시기를 미뤄왔다. 하지만 최근 환율이 예상을 뛰어넘어 급등하자 미리 송금을 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고 있다.

최근 6거래일 연속 환율이 급등하면서 달러 당 원화 환율이 1450원까지 급등하면서 전문가들의 예측을 뛰어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올초까지만 해도 전문가들은 올해 원-달러 환율을 '상고 하저'의 흐름으로 예상하면서 평균 환율을 '상반기 1300원대 하반기 1100원대' 로 봤다. 국제 금융시장이 점차 안정을 되찾고 미국의 경기부양책이 달러 약세를 부추길 것이며 한국의 경상수지가 흑자로 돌아서면서 원화 약세(환율 상승)를 완화시킬 것이라고 본 것이다.

하지만 이런 낙관적 전망은 국내외 악재가 잇달아 터져 나오면서 다시 비관론에 자리를 내주고 있다.

●국내외 안팎 온갖 악재

외환시장 불안의 근본적 원인은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전례 없는 유동성 공급으로 경제 위기가 어느 정도 진압되지 않을까 했던 기대가 실현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진우 NH선물 부장은 "리먼 사태 이후 세계 각국이 유동성을 쏟아 붓고 각종 경기부양정책을 내놓으면서 시장에서는 자금시장에도 봄이 오지 않겠냐는 막연한 기대가 많았다"며 "하지만 돈을 풀어도 돌지 않는 신용경색은 해소되지 않고 '이번에는 어디가 터질까'하는 불안감만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외화자금 사정도 여전히 어렵다. 미국에 이어 영국, 유럽의 금융권이 불안한 모습을 보이며 '제2 리먼사태'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면서 국내 은행들은 여전히 해외로부터의 달러차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최근 우리은행이 4억 달러 규모의 10년 만기 후순위채에 대한 콜옵션(조기상환요구)를 행사하지 않기로 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후순위채는 10년 만기로 발행하더라도 5년이 지나면 발행 금융회사가 콜옵션을 행사해 조기상환하는 것이 관례. 하지만 신규 달러자금을 해외에서 조달하려면 15%에 이르는 고금리를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우리은행이 조기상환을 포기한 것.

금융 당국은 "해외 금융회사들도 최근 후순위채 콜옵션 행사를 포기한 사례가 있어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일부 해외 투자가들은 한국의 달러 부족이 심각한 것 아니냐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실제 우리은행의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은 13일 5.80%로 지난달 말의 4.50%에 비해 1.30%포인트나 급등했다. CDS프리미엄은 금융회사의 파산위험에 대한 보험료 성격으로 이 수치가 높을수록 신용위험이 크다는 뜻이다.

북한마저 원화의 가치를 떨어트리는데 크게 일조하고 있다. 북한군이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에서 움직임이 부산하고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준비하고 있다는 보도들이 한국의 '컨트리 리스크'를 키우면서 원화가치를 떨어트리고 있다.

●정부 개입 효과, 국제 금융시장 안정이 관건

전문가들은 연초 예상을 접고 당분간 환율이 '고공행진'을 계속할 것으로 환율 전망을 수정하고있다.

국내외 경제 상황이 안정이 되고 신용경색이 풀려야 외환시장도 안정될 수 있는데 지금 상황으로 봐서는 그럴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

단기적으로는 '2기 경제팀' 윤증현 호의 외환시장 개입 강도와 효과가 환율을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강지영 외환은행 연구원은 "지난해는 정부가 외환시장을 개입했지만 시장에 끌려다니면서 별 효과를 못 봤는데 새 경제팀은 최악의 시나리오를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 보다 강력하고 효과적인 개입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정재윤기자 jaeyu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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