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도 다함께/함께사는법]<4>네팔 요리 전문점 운영 가네스 리잘 씨

  • 입력 2009년 2월 18일 02시 58분


경기 안산시 단원구 국경 없는 마을의 네팔 음식 전문점 ‘칸티푸르’에서 안산의 외국인들에게 음식을 제공하고 있는 네팔인 가네스 리잘 씨(오른쪽). 리잘 씨의 꿈은 한국 최대의 네팔 음식점 체인을 만드는 것. 그는 인내와 성실로 숱한 어려움을 딛고 코리안 드림을 이뤄나가고 있다. 안산=홍진환 기자
경기 안산시 단원구 국경 없는 마을의 네팔 음식 전문점 ‘칸티푸르’에서 안산의 외국인들에게 음식을 제공하고 있는 네팔인 가네스 리잘 씨(오른쪽). 리잘 씨의 꿈은 한국 최대의 네팔 음식점 체인을 만드는 것. 그는 인내와 성실로 숱한 어려움을 딛고 코리안 드림을 이뤄나가고 있다. 안산=홍진환 기자
산업연수생서 레스토랑 사장님으로… 10년만에 이룬 ‘코리안 드림’

3년간 산업연수후 귀국… 5년뒤 다시 찾아와 사업 도전

年매출 1억5000만원 대박… “2, 3년내 전국 체인점 낼것”

안산 원곡동 50개국 출신 3만여명 거주 ‘국경없는 마을’

너도나도 ‘제2의 리잘’ 꿈키워… 다문화 도시 새모델 주목

15일 오후 2시 경기 안산시 단원구 원곡동 ‘칸티푸르(KANTIPUR)’ 레스토랑. 네팔 및 인도 요리 전문 음식점이다.

점심시간을 넘겼지만 창가 쪽에는 빈 테이블이 보이지 않았다. 네팔인은 물론이고 한국인, 금발의 백인, 까무잡잡한 피부의 동남아인 등 손님들의 면면도 다양했다.

네팔 전통모자 ‘토피’를 쓴 한 남자가 주방과 홀을 오가며 부지런히 음식을 날랐다. 바로 이 식당의 사장 가네스 리잘 씨(32)다. 직원이 있지만 손님이 많은 일요일에는 이렇게 직접 음식을 나른다.

리잘 씨는 “어제 하루에만 200만 원 정도 매상을 올렸다”며 “경제가 어렵다고 하지만 우린 단골손님이 많아 괜찮은 편”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 레스토랑 사장이 된 산업연수생

리잘 씨가 한국 땅을 밟은 것은 1999년 4월. 산업연수생 신분으로 경기 김포시의 한 플라스틱 사출업체에 취직했다.

말도 통하지 않는 타국에서 리잘 씨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묵묵히 일하는 것뿐. 12시간 가까이 지게차를 운전하거나 제품을 포장하는 것이 하루 일과였다. 외국인 동료가 결근이라도 한 날에는 18시간 넘게 일을 해야만 했다.

무엇보다 한국 직원들과의 보이지 않는 거리감이 그에게 커다란 벽으로 다가왔다. 그럴 때마다 네팔에 있는 부모님과 아내, 그리고 젖먹이 아들을 떠올리며 남몰래 눈물을 흘렸다.

한국말을 모르니 불평도 할 수 없는 외로운 처지였지만 참고 또 참았다. 그렇게 1년. 그를 보는 시선은 크게 달라졌다. 늘 선한 미소와 남다른 성실함 덕분이었다.

3년간의 연수를 마친 2002년. 한국인 직원들은 “불법체류자 신분이어도 괜찮으니 계속 함께 일하자”고 권유했다.

식사 때마다 반찬을 한 움큼씩 더 얹어주던 구내식당 아줌마까지 그의 손을 잡으며 말렸다. 잠시 마음이 흔들렸지만 결국 귀국을 선택했다.

“한국 생활이 무척 좋았어요. 한국인 직원들도 나한테 잘해줬고요. 그래서 꼭 다시 오기로 마음먹었죠.”

금방 오리라는 생각과 달리 리잘 씨의 한국행은 5년 뒤인 2007년에야 이뤄졌다.

그가 세운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준비기간이 필요했다. 리잘 씨의 목표는 한국에서 네팔 음식점을 여는 것이었다.

“제가 일했던 김포 플라스틱 회사의 과장님, 식당 아줌마한테 맛있는 네팔 요리를 직접 해드리는 게 소원이었습니다. 친절한 한국 사람들한테도 진짜 네팔 음식을 맛보이고 싶었고요.”

한국에 다시 온 그는 곧바로 서울의 네팔 음식점에서 일하며 식당 운영을 배웠다. 마침내 지난해 2월 이곳 원곡동에 110m² 규모의 ‘칸티푸르’를 개업했다.

○ “아직 나의 꿈은 미완성”

리잘 씨의 아버지는 네팔에서 꽤 큰 가구공장을 하는 기업인이다. 직원이 50∼60명에 이른다. 자신의 재산을 털어 정기적으로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사회사업가이기도 하다. 그런 아버지가 있지만 리잘 씨는 한국행을 선택했다. 직접 고생하면서 돈을 벌기 위해서다.

“다 큰 뒤에는 아버지가 돈을 주신 적이 없습니다. 자신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돈은 직접 벌어서 쓰라는 뜻이었죠.”

어렵게 연 식당은 한 달에 1500만 원의 매출을 올릴 정도로 손님이 늘었다. 손님의 절반은 한국인이다. 미국인, 캐나다인 손님도 많다.

“네팔식 카레와 탄두리(닭고기 양념구이)가 제법 맛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서울에서도 찾아올 정도. 지난 1년간 올린 매출은 1억5000만 원을 훌쩍 넘었다.

리잘 씨는 앞으로 지방에 칸티푸르 2호점을 열 계획이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지금 정도면 2, 3년 안에 본격적인 체인점 사업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는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이제 식당을 운영하는 것이 재미있다”며 “한국 최고의 네팔 요리 체인점을 여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식당 운영에 눈코 뜰 새 없지만 리잘 씨는 한 달에 서너 번씩 한국에 오는 네팔 동포들을 공항에서 수도권 각지로 태워다준다. 물론 돈은 받지 않는다.

“한국에 오는 사람들의 사정이야 뻔하죠. 그저 희망만 갖고 올 뿐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돈을 받아요.”

○ ‘코리안 드림’을 꿈꾸는 국경 없는 마을

리잘 씨의 ‘칸티푸르’가 있는 안산시에는 불법체류자를 포함해 약 6만 명의 외국인이 살고 있다. 특히 ‘국경 없는 마을’로 불리는 단원구 원곡동에만 50여 개국 3만여 명이 거주하고 있다.

모두 ‘제2의 리잘’을 꿈꾸며 이곳을 지키고 있다.

자동차부품 공장에서 일하는 수이쏘디아 씨(30·캄보디아)의 꿈은 캄보디아에서 가난한 아이들의 희망을 위해 태권도장을 여는 것이다. 한국에 온 지 2년 만인 지난해 11월 국기원에서 단증을 딴 그는 “나에게 한국은 기회의 땅”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2003년 한국에 처음 온 마노자 씨(33·네팔)도 “돈을 더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한국의 대학에서 한국 문화와 전통을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안산시는 이들의 코리안 드림을 위해 외국인 인권조례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올해 안에 국경 없는 마을을 ‘다문화 특구’로 지정받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고 다문화 가정의 자녀들이 다닐 초중고교 과정의 국제학교 설립도 검토 중이다.

외국인주민센터 김창모 소장은 “50개가 넘는 나라에서 온 외국인들이 한동네에 모여 사는 곳은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며 “안산이 다문화 도시의 새로운 모델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안산=이성호 기자 stars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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