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박은 한 달에 한 번뿐
CCTV-무전기 통제받으며
하루 15시간 공부 또 공부
‘대입 위해 참자’ 다짐하건만
‘쇼생크 탈출’이 생각나네》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편하게 주무셨습니까?”
18일 오전 6시 반 경기 이천시 부발읍에 있는 광주종로학원. 기상을 알리는 당직 생활지도교사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서 흘러나오자 잠에서 깨어난 19, 20세의 젊은이들이 서둘러 방을 빠져나와 복도로 나왔다. 지도교사는 엄한 목소리로 “빨리 점호 준비하라”를 외쳤고 원생들은 복도에 두 줄로 늘어섰다. 인원 파악을 마치고 나니 식사와 세면 시간. 좁은 공간과 시간을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생활지도교사의 통제에 따라 번갈아 씻고 번갈아 식사를 했다. 식사를 마친 이들은 서둘러 100여 m 떨어진 강의실로 뛰어갔다. 18일 이곳 학원생의 하루는 이렇게 시작됐다. 입실 시간은 오전 7시 반.
○ 하루 15시간 공부
친구들이 대학 입학식을 앞두고 있을 때 학원 로고가 들어간 유니폼을 입고 ‘D-267’을 세며 절치부심하는 기숙학원생들. 9시 오전 수업 전까지 영어듣기 평가와 자율학습이 진행된다. 오전 9시경부터 밤 12시까지 수업과 자율학습을 반복하며 15시간을 채운다.
수업시간 졸음이 오는 학원생들은 자발적으로 책을 들고 교실 뒤로 이동한다. 서서 수업을 들으며 애써 졸음을 쫓기 위한 것. 일부 학원생들은 쉬는 시간에도 교사를 따라가 질문을 던지곤 했다.
30여 m²의 크기에 화장실이 두 개 설치된 작은 방에서 10명이 함께 생활한다. 이곳에서 생활하는 학원생들은 남녀를 합쳐 150여 명.
한 달에 한 번인 2박 3일 외박, 중간 휴식시간에 매점에서 간식 사먹는 일, 식사 후 자유시간을 이용해 짬짬이 운동을 즐기는 것이 이들의 유일한 낙이다. 학원생들은 외부와 단절된 재수생활을 빗대 죄 없는 ‘죄수생’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 무전기, CCTV로 철저한 시간관리
기숙학원의 규율은 엄격하다. 휴대전화, CD플레이어, MP3플레이어 등 소지금지 품목이 있을 뿐만 아니라 무단외출, 폭력, 음주, 이성교제 등은 퇴원 조치 사유에 해당된다.
시간관리도 철저하다. 학원 내에는 폐쇄회로(CC)TV 30여 대가 설치돼 학원생들을 실시간으로 감시한다. 학생지도교사 20여 명은 학원생들의 인원 점검, 상담 등 용건이 있을 때마다 무전기와 이어폰으로 서로 교신하며 학원생들의 시간을 관리해준다.
이정우 학생과장은 “스파르타식 기숙학원은 옛말”이라며 “최근 기숙학원들은 학원생들의 철저한 시간관리와 학과관리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 “하고픈 것 많고 고민도 많은 청춘”
“나는 지금 여기에 누워 있다. …과연 이게 잘한 선택일까…이렇게 질 수는 없다. 그런데 왠지 쇼생크 탈출이 생각난다. 첫날밤, 미치겠다. 울고 싶다.”(재수생 조모 씨의 기숙학원 일기)
“우리에게 ‘스무 살’이 없어진다는 게 참 슬퍼. 이제 재수생이구나. 아, 재수생이 아니라 ‘죄수생’이구나.”(재수생 이모 씨)
통제된 공간에서 생활하는 학원생들은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에 친구들보다 뒤처지고 소외감을 느끼는 것이 고민이다. 김모 씨(20)는 “엄마도 드라마 ‘꽃보다 남자’ 얘기를 하던데 본 적이 없어서 소외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하지만 가장 큰 고민은 역시 성적.
19일 0시가 지나 취침 점호가 끝나고 잠들기 전. 채모 씨(19)는 “한 달에 180여 만 원씩 내며 공부하고 있는데 시간을 헛되이 보낼 수 없다”며 “부모님 생각하며 하루하루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천=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
신민기 기자 minki@donga.com
▼교회 두고 신앙 보장
자녀 생활 홈피 중계
심리검사→맞춤학습▼
■ 기숙학원의 진화
전국에 있는 기숙학원은 등록된 곳만 헤아려도 40곳이 넘는다. 학생 유치를 위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다른 학원들과 차별되는 ‘우리 기숙학원만의 강점’을 부각시키기 위해 기숙학원은 스스로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경기 양주시에 있는 A학원은 학원 안에 교회를 두고 기독교 신자 학생들에게 주말 종교 활동을 보장한다. 학업과 종교생활을 병행하기를 바라는 학생과 학부모의 마음을 읽어낸 것이다.
경기 용인시에 있는 B학원은 강의실과 식당 등에 폐쇄회로(CC)TV를 촘촘히 설치해놓아 자녀의 생활 태도를 궁금해하는 학부모들이 학원 홈페이지에서 자녀의 이름만 입력하면 일거수일투족을 볼 수 있게 했다.
행여 이성교제에 한눈을 파느라 학업에 지장 받지 않을까 염려하는 학부모를 위해서 경기 광명시에 있는 C학원은 아예 남학생 학원과 여학생 학원을 분리해 운영하고 있다.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 차별화로 승부를 거는 곳도 있다. 경기 양주시에 있는 D학원은 학생들이 등록에 앞서 ‘MBTI’로 불리는 심리검사를 받는다. 학생들의 심리 성향을 파악해 각각의 성향에 따른 맞춤형 학습 프로그램을 처방해 준다.
우정열 기자 passi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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