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법정선 “조폭 동료 감싸는것 의리 아니다” 훈계
부부 사이의 강간죄를 인정하는 판결에 이어 성전환자(트랜스젠더) 성폭행을 강간죄로 처음 인정한 부산지법 형사5부 고종주 부장판사(60·사법시험 22회·사진)가 법조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고 부장판사는 평소 사회적 약자의 권익 보호를 위해 노력하는 법관으로 평가받아 왔고 이번 판결도 그 결과라는 게 법조계의 시각이다. 그는 ‘김상진 게이트’에서 전군표 전 국세청장, 정윤재 전 대통령의전비서관, 정상곤 전 부산지방국세청장 등의 재판을 맡기도 했다.
▽부산발 명판결=지난해 2월 법조계 안팎에서는 ‘인지부조화’라는 말이 유행했다.
전 전 국세청장에게 유죄 선고를 하면서 고 부장판사가 인용한 말이다. 그는 전 씨의 심리를 설명하면서 ‘기억이 자존심에 굴복한다’는 독일 철학자 니체의 말과 왜곡된 과거 기억이 확신으로 무장돼 사실과 다른 진술을 한다는 점을 의식하지 못하는 심리학의 인지부조화 이론을 동원했다.
부부 강간죄 판결 때에는 “강간죄의 보호 대상을 ‘여성의 정조’가 아닌 인격권에 해당하는 ‘성적 자기결정권’으로 보는 만큼 아내에게도 같은 권리가 있다”며 물리적 약자인 여성의 권리를 보호하는 편에 섰다.
18일 성전환자 성폭행 사건 판결에서는 “성전환자에 대해 근거 없는 혐오감과 막연한 불쾌감이 있는 사람도 있지만 성정체성의 혼란은 그들의 책임이 아니며, 새로운 성으로 살겠다는 진정성이 사회질서에 반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일부 세태를 꼬집었다.
▽진심을 담은 훈계문=판결문과 별개로 그는 피고인에게 진심이 어린 훈계를 여러 차례 했다.
2007년 범죄단체 구성혐의로 법정에 선 조직폭력배들에게 “의리라는 것은 선후배나 친구들이 건전한 사회인으로 처신한 경우에만 지켜질 수 있는 것이다. 선후배나 친구들이 부적절한 처신으로 범죄에 연루됐을 때는 교화하거나 아니면 멀리하는 것이 바로 의리”라고 조폭의 의리에 일침을 놨다.
성전환자를 성폭행한 20대에게는 “오늘을 기점으로 삶의 태도와 방식을 바꿔야 합니다. 주변에는 어려운 사람이 많습니다. 다가가서 무슨 일이든 좋은 일을 하세요.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을 주세요. 그러라고 신은 좋은 신체와 건강한 정신을 주신 것입니다”라고 타일렀다.
그는 부산대 법대 재학 중 경남 진주 개천예술제에서 시(詩)로 입선한 경력도 있다. 2004년에는 시집 ‘우리 것이 아닌 사랑’(부산대 출판부)에서 아내와 딸, 이웃, 자연과 신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기도 했다.
윤희각 기자 to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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