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부터 철저한 우열반 수업… 한국과는 딴판
“싱가포르 초등학교 중에는 방학식 때 반에서 1∼3등 하는 학생들만 가는 학교도 많아요. 상 받으러 가는 거죠.”
두 딸과 함께 싱가포르에서 2년째 유학생활을 하고 있는 이정상 씨(37)는 싱가포르 초등학교의 이런 독특한 방학식 풍경이 놀라웠다고 말했다.
싱가포르는 초등학교 때부터 학생들의 성적을 1등부터 꼴등까지 투명하게 공개한다. 싱가포르 교육의 가장 큰 특징인 ‘우열반(stream)’ 수업을 하기 위해서다. 싱가포르에서는 영어, 모국어(중국어, 말레이어, 타밀어), 수학, 과학 등 주요 과목을 모두 학생의 수준에 맞춰 2, 3개 반으로 나눠 가르친다. 이런 우열반 수업은 초등학교 5, 6학년 때 처음 시작되어 고등학교 때까지 쭉 이어진다. ‘사교육 이기는 공교육’이라는 싱가포르 교육의 명성은 여기서 시작됐다.
문제는 이런 철저한 우열반 수업이 한국 엄마들에게는 고민거리라는 것. ‘100% 영어로 가르치는 현지 수업을 따라가지 못해 우리 아이가 반에서 뒤처지는 것은 아닐까’ 항상 노심초사하게 된다. 한국 학생들은 대개 영어 실력이 모자라 제 나이보다 1, 2학년 낮춰 편입하게 마련이라 자녀가 어린 학생들 사이에서 열등감을 갖지는 않을까도 걱정이다.
한국 학부모들은 이런 이유로 사교육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사교육 없이 공교육만으로 된다더라’는 말에 싱가포르 유학을 택했던 애초의 취지가 무색해진 셈이다. 학생들은 영어 중국어 수학 과학 등 주요 과목은 기본이고, 체육, 음악 등 예체능까지 모두 과외(튜션·tuition)를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싱가포르 명문 초등학교에 아들을 보내는 한 엄마는 “주위의 한국 학부모들은 대개 10개가 넘는 과외를 시킨다”고 말했다.
한 과목 과외를 받는 데 드는 비용은 시간당 25∼100싱가포르달러(약 2만2500∼9만 원). 대학생이면 25싱가포르달러만으로 충분하지만, 일부러 50∼60싱가포르달러를 주고 현직 교사를 구하거나, 100싱가포르달러를 주고 하버드대 졸업생을 구하는 학부모도 있다. 과외 10개를 시키려면 한 달에 90만∼360만 원이 들 수 있다는 뜻이다.
싱가포르 현지인들은 한국 학부모들의 이런 ‘과외 신드롬’에 혀를 내두른다. 싱가포르 현지에서도 과외 열기가 높아 전체 초중고교 학생의 97%가 과외를 받고 있지만, 대부분 주요 과목 가운데 자신이 약한 과목만 과외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엄마들은 ‘정보전’에 강하기로도 유명하다. 싱가포르 공립학교들의 순위를 정리한 소위 ‘상위(TOP) 50 학교’ 리스트를 현지 유학원으로부터 구해 공공연하게 유통(?)시키는 것도 한국 엄마들이다.
싱가포르에는 입학시험 대신 졸업시험이 있다. 초등학교 졸업시험(PSLE), 중학교 졸업시험(O-Level), 고등학교 졸업시험(A-Level)을 치르고 졸업 시험 성적에 맞춰 자신의 수준에 맞는 학교에 진학하는 것이다. 싱가포르 정부의 교육 관계자들은 “발표도 하지 않는 학교 순위를 알아내는 한국 엄마들의 열성에 놀랐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 못지않은 교육 열기에도 불구하고, 한국 엄마들은 “싱가포르 교육이 한국 교육보다는 여유롭다”고 말한다. 초등학생 딸을 위해 6개월 전에 싱가포르로 왔다는 한 한국 엄마는 “싱가포르 학교는 쓸데없는 걸 안 시켜서 좋다”고 말했다. 싱가포르에서는 중고교나 대학교에 진학할 때 내신은 전혀 보지 않고, 영어 중국어 수학 과학 등 주요 과목의 졸업시험 성적만 반영한다. 이 때문에 암기과목이나 예체능에 크게 신경을 안 써도 된다는 말이었다. 그는 “한국에서는 체력장 때문에 줄넘기 과외까지 받는다는데, 싱가포르에서는 전 과목을 다 잘하지 않아도 되어서 아이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다는 게 좋다”며 만족스러워했다.
최세미 기자 luckyse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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