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는 복지지원금… 실사현장 따라가보니

  • 입력 2009년 2월 25일 11시 53분


▼새는 복지지원금… 실사현장 따라가보니▼

“이혼하고 선배 집 더부살이” 생활보장지원 요청

실제 사는 아파트 찾아가자 “여길 어떻게” 당황

21일 오후 7시. 서울 강동구 복지조사팀 이선자 씨는 H 씨(50대)의 집으로 추정되는 아파트 앞에서 안으로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

H 씨는 “이혼하고 집도 없어 선배 집에 얹혀산다”며 기초생활보장지원을 요청했다. 그러나 이 씨가 H 씨의 선배 집에 가보니 도저히 얹혀살기 힘든 비좁은 집이었다. 이 씨는 H 씨가 지원금을 타기 위해 허위신고를 했다고 판단했다.

이 씨는 H 씨 가족의 가족관계등록부 등을 참고해 그가 실제 살고 있는 아파트를 알아냈다. 초인종을 누르자 문을 연 H 씨는 “여길 어떻게 알았느냐”며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 씨는 “처음에 솔직히 말했더라면 이런 일이 없지 않았겠느냐”며 “기초생활보장지원은 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올 1월 긴급복지지원 건수는 전국에서 3714건으로 지난해 1월(2328건)에 비해 59.5% 늘었다. 지원을 받는 사람은 5915명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복지부와 지자체에서 각종 민생안정대책을 시행한 결과다.

익명을 요구한 한 공무원은 “부정수급이나 허위신고가 크게 늘어 실사 나갈 시간이 부족하다”며 “‘찾아가는 복지’ ‘발굴하는 복지’라는 구호는 환상”이라고 털어놨다.

복지지원 담당 공무원이 신청자의 실제 생활여건을 실사하는 데는 며칠씩 걸린다.

거주지 위장전입 후 지원금을 타내려는 경우, 4대 보험 미가입자이거나 소득신고를 하지 않은 일용직 노동자의 경우, “호적상 자식이 있지만 연락 끊고 산 지 오래됐다”며 부양의무자가 없다고 말하는 노인의 경우 등은 현장조사 없이 지원 대상 여부를 파악하기 힘들다. 그만큼 지원 대상이 아닌 사람에게 눈먼 돈이 나갈 가능성도 크다.

정작 지원 대상이 되는데도 지원받을 수 없는 ‘완전한 사각지대’도 적지 않다.

장모 씨(50대)는 사업자등록 없이 소규모 인테리어 하청업을 하다가 지난해 12월 폐업했다.

폐업 후 장 씨는 생활이 막막했지만 지원을 받을 수 없었다. 사업자등록증이 없어 폐업·실업임을 증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 자치구 복지지원과장은 “정부 차원의 시스템으로 사각지대를 골라내기 힘들다면 전담반을 만들어 현장에 나가 실사하거나 사각지대를 찾아내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현지 기자 nuk@donga.com

▼전문가 기고 ▼

최균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정부가 신빈곤층이나 실직자, 폐업한 자영업자에 대한 긴급구제와 자활지원 사업에 추가경정예산으로 투입하는 재정규모가 10조 원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복지 재원은 적절하게 배분돼야만 정책의 실효성을 확보할 수 있다. 효과적인 복지전달 체계의 구축과 원활한 작동이 핵심 조건이다.

그러나 현행 체계는 대상자 선정의 비합리성, 복지서비스 정보 분산, 서비스 전달 과정의 복잡성, 통합관리 부재 등의 문제점을 안고 있다.

‘퍼주기식 복지’를 개선하기 위해선 대상자 선정의 합리성을 제고하고 급여의 부정사용 방지를 위한 제도적 보완책이 마련돼야 한다. 급여의 효과를 모니터링할 수 있는 사후관리체계와 사회복지 통합관리망 구축도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행정인력 확충과 전문성 확보가 전제돼야 한다. 각종 복지사업이 증가함에 따라 일선 복지행정 현장에서는 깔때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즉, 여러 중앙부처에서 계획한 정책들이 하달돼 각종 사업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과도한 업무 부담이 발생하고 있다.

또 복지전달체계 구조를 수요자 중심, 맞춤형서비스 제공, 통합관리체계 구축을 목표로 개선해야 한다. 현재 정부가 계획 중인 ‘희망복지지원단’은 복지, 노동, 보건·의료, 주택, 교육 분야에 맞춤형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구축해야 한다. 부처이기주의가 개입돼 행정 분산과 같은 병폐가 재연돼서는 안 된다.

공공부문의 역할을 보완해 줄 민간부문 자원과의 연계 및 협력체계도 마련해야 한다. 민간부문은 공공행정이 미치지 못하는 부분까지 복지서비스와 자원을 제공하는 역할을 수행할 만큼 자원과 역량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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