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포상사’ 차려 양산… 전국 16만대 추정
“이용자도 처벌할 수 있게 법 바꿔야” 지적
자동차세와 정기검사비용 걱정 없이 값싼 액화석유가스(LPG) 연료를 사용할 수 있고, 책임보험에 가입할 필요도 없다. 게다가 속도위반 범칙금 스티커 한 장도 날아오지 않는 자동차가 있다. 이른바 ‘대포차(불법명의 자동차)’다.
만약 연쇄살인사건 피의자 강호순 씨가 자신의 어머니 명의의 차량을 타지 않고 이런 차량을 이용했다면 폐쇄회로(CC)TV에 잡혔더라도 태연하게 꼬리를 감출 수 있었을지 모른다.
○ 등록요건 갖춘 ‘대포상사’가 전국구 영업
광주지검 마약조직범죄수사부가 23일 광주지역 중고자동차 매매상 등을 대상으로 한 수사 결과 발표에 따르면 이같이 온갖 ‘특혜’로 소비자를 유혹하는 대포차가 양산(量産) 단계에 접어든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에 적발된 7개 조직 20여 명(5명 구속)이 만들어 판 대포차만 1729대에 이른다.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전국의 도로를 누비는 대포차 수는 약 16만 대로 추정된다. 이번 수사로 나타난 대포차 시장의 큰 변화는 과거 부도난 법인차량 또는 도난차량 등이 ‘개인 대 개인’ 형태로 단발 거래된 데서 벗어나 ‘기업형’ 조직으로 대규모화됐다는 것. 여기에 등록요건을 갖추고 중고차 매매상사 간판을 내건 뒤 대포차를 전문적으로 유통시키고 사라지는 속칭 ‘대포상사’가 매개체로 자리 잡았다는 점이 처음 밝혀졌다.
이들 대포상사는 우선 택시 회사나 렌터카 회사의 사용연한 경과 차량 등을 팔기 위해 일반 자가용으로 부활 등록시킨 뒤 싼값의 LPG차량 구매를 원하는 소비자들에게 넘겨주고 차량 판매비 외에 대당 20만∼30만 원의 수수료를 챙겨 왔다. ▶유통경로 1 참조
중고자동차 매매단지 또는 인터넷 중고차 매매사이트가 중간상으로 끼어 영업하는 경우에도 대포상사가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유통경로 2 참조
이들 대포상사는 인터넷과 택배망 등을 이용해 소위 ‘전국구’ 영업에 나서 많게는 한 곳당 불과 2, 3개월 사이에 300대 가까운 대포차를 팔아 1억 원가량을 챙긴 사례도 나타났다.
○ 현행법엔 이용자 처벌 규정 없어
이번 수사를 계기로 대포차 이용자에 대한 처벌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과거 국민권익위원회 등도 대포차 이용 차단조치와 사후 형사처벌이 시급하다고 권고했지만 아직 관련 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현행 자동차관리법(제12조 1항)은 ‘등록된 자동차를 양수받은 자는 자동차 소유권의 이전등록을 신청해야 한다’고만 규정해 대포차 이용자에 대한 처벌 규정이 없다. 이는 책임보험에 가입하지 않고 운행한 차량 보유자에 대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한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 규정에 비춰 ‘형평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검찰 관계자는 “지난해 12월 국토부가 관련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으나 입법이 이뤄지지 않았다”라며 “그 개정안에 따르더라도 ‘대포상사’의 업주 또는 전문브로커 등에 대한 처벌 규정은 없어 추가 개정안이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에 구속된 ‘대포상사’ 업주의 경우 이 같은 법령 미미로 형법상 공전자기록(자동차등록원부) 부실기재 혐의를 적용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 수사를 이끈 광주지검 조남관 마약조직범죄수사부장은 “그동안 간헐적인 대포차 단속은 있었지만 대량 유통조직에 대한 대대적 수사는 이번이 처음”이라며 “전국적 수사 확대와 함께 법령 및 제도 개선이 이뤄지도록 건의하겠다”고 말했다.광주=김권 기자 goqu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