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高 잭폿” 외국인 카지노 불황속 불야성

  • 입력 2009년 2월 27일 22시 55분


25일 오후 7시 경 서울 중구에 있는 세븐럭 카지노 밀레니엄 서울 힐튼점.

일본인 관광객 단체가 관광버스에서 내려 카지노 입구에 들어섰다.

관광 가이드가 "3시간 후 입구에서 만나자"고 말하자 관광객들은 카지노 안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주차장에는 일본인 관광객을 태운 관광버스가 속속 들어오고 있었다.

이른 시간이었음에도 카지노 안은 빈자리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밀려드는 관광객들로 57개의 테이블과 142대의 머신은 쉴 새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사상 유례가 없다는 불황은 외국인 전용 카지노에서는 남의 나라 얘기인 듯했다.

23일 원-엔 환율이 사상 처음으로 100엔당 1600원을 넘어서는 등 환율이 폭등하면서 곳곳이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세븐럭이나 파라다이스 같은 외국인 전용 카지노들은 '대호황'을 누리고 있다.

●"엔고 실컷 즐길래요."

한국관광공사가 운영하는 세븐럭 카지노는 지난달 430억 9000만 원의 매출을 올려 2006년 회사 설립 후 월간 최대 매출을 기록했다. 이달 들어 24일 현재 매출액은 364억 3000만 원에 이른다.

일본인 관광객의 카지노 입장이 급증한 것은 지난해 하반기 시작된 엔고의 영향이다. 이 같은 현상은 올해 들어 더욱 두드러진다.

1월 세븐럭 카지노의 3개 매장(밀레니엄 힐튼, 강남, 부산 롯데)의 전체 입장객 중 일본인의 비율은 56.3%(5만5888명)였다. 이달 들어서는 이 비율이 63.8%로 늘었다.

일본인들이 많이 찾는 명동이나 도심과 가까운 힐튼점의 일본인 고객 비율은 71.4%나 된다.

매장 환전소에서 가장 많이 들을 수 있는 말은 "스고이(대단하다)"다. 예전 같으면 1만 엔을 원화로 환전할 때 8~9 만원 정도를 받았으나 지금은 15만 원 이상을 받기 때문이다.

도쿄에서 왔다는 이케우치 나츠코 씨(20) 씨는 "한국을 처음 왔는데 무척 싸게 관광을 하는 느낌"이라며 "엔화가 곧 떨어질 수도 있을 것 같아 그러기 전에 마음껏 즐길 생각"이이라고 말했다.

손님들이 급증하면서 피로감을 호소하는 딜러들도 생겼다. 김명숙 딜러(27)는 "원래 1시간 일한 뒤 20분을 쉬는데 요즘은 2시간을 일하고 10분 밖에 못 쉬기도 한다"며 "힘들 때도 있지만 외화벌이에 일조를 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갖고 일 한다"고 말했다.

●'한 탕' 심리로 강원랜드도 호황

또 다른 외국인 전용 카지노인 파라다이스도 엔고 현상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광진구 광장동에 있는 파라다이스 워커힐 카지노는 올해 1월 일본 관광객이 4510명으로 지난 해 같은 기간(5431명)에 비해 17% 정도 줄었다. 서울 도심에서 떨어져 있다보니 접근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엔고에다 고객들의 씀씀이가 커지면서 일본인 관광객들로 인한 매출액은 51억3000만 원에서 오히려 93억3000만 원으로 급증했다.

부산과 제주를 포함한 파라다이스 전체 카지노의 지난해 4분기(10~12월) 영업이익은 86억4700만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 대비 353.3% 급증했다.

한편 극심한 불황 속에서도 국내 유일의 내국인 카지노인 강원랜드 역시 빈 자리를 찾기 힘들 정도로 성황을 누리고 있다. 강원랜드의 지난해 4분기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각각 2%와 6% 늘었다. 입장객은 76만1000명으로 20%가량 증가했다.

하지만 강원랜드를 찾은 사람 중에는 불황으로 고통 받는 중산층과 서민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VIP고객 매출은 20% 이상 급감했지만 서민 중심의 일반고객 매출은 오히려 7.7% 늘은 것이다.

굿모닝신한증권 심원섭 연구원은 "불황일 때 '한 탕'을 노리는 심정으로 카지노를 찾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고 원인을 분석했다.

이헌재기자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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