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지 채용 힘든데 소음민원 쇄도
“집회신고 선점해야” 석달째 밤샘
5일 0시 서울 성북경찰서 정보과 앞. 중소건설업체 공사과장 안모 씨(37)는 정보과 사무실을 나오자마자 화장실로 향했다.
“이 앞에서 6시간을 기다리면서 소변을 못 봤어요. 화장실 간 사이에 노조원들에게 자리를 빼앗기면 어떡합니까.”
생리현상까지 참으면서 안 씨가 정보과 앞에 진을 친 이유는 노조보다 먼저 집회신고를 하기 위해서다. 0시부터 선착순으로 그날의 집회 신고를 받기 때문에 안 씨는 오후 6시 일을 마치면 곧장 경찰서로 출근한다. 6시간을 기다려 집회신고를 한 뒤 귀가하면 오전 1시. 안 씨는 4시간가량 눈을 붙인 뒤 다시 출근 채비를 한다.
두 딸의 아버지인 안 씨가 석 달째 심야 ‘경찰서 출근’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은 타워크레인 노조의 집회로 공사에 차질이 생길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안 씨의 직장인 A건설은 전체 직원이 16명인 영세업체. A건설은 서울 성북구의 한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지하골조공사를 하면서 타워크레인 작업을 임대업체에 맡겼다.
문제는 노조원 고용문제로 갈등이 생기자 타워크레인 노조가 ‘을(乙)’인 임대업체를 압박하기 위해 ‘갑(甲)’인 A건설을 상대로 집회를 벌이게 된 것.
노조는 공사현장 앞에서 확성기로 민중가요를 틀며 노조원 고용을 촉구했다. 집회 소음 때문에 인근 아파트단지와 유치원 등에서 민원이 쇄도했다. 회사 이미지에도 큰 타격이었다.
안 씨는 “대형 건설사라면 ‘타워’ 10개 중 몇 개 정도 노조에 줘버리고 조용히 넘길 수 있을 것”이라며 “우리는 타워가 3개뿐이라 노조원을 채용하고 시간외수당도 달라는 요구를 다 들어줄 수가 없다”고 말했다.
궁리 끝에 찾은 해법은 노조보다 미리 집회신고를 해 시위장소를 선점하는 것이었다. 성북경찰서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사는 안 씨가 총대를 메고 노조와의 자리싸움에 나섰다.
안 씨는 일을 마치자마자 저녁식사도 거른 채 경찰서로 달려갔지만 발길을 돌려야 하는 날이 많았다. 노조원들은 2인 1조로 근무표를 짜놓고 식사를 하거나 담배를 피울 때도 교대를 하면서 정보과 앞을 지키기 때문이다.
6일 현장에 있는 컨테이너 사무소에서 만난 안 씨는 타워크레인 임대업자와 한창 통화 중이었다.
“노조와 만나서 대화로 좀 풀어 봐요. 저녁마다 경찰서 쫓아다니느라 우리도 죽겠어요.”
임대업체와 노조 사이에 낀 A건설 직원들은 노조와의 오랜 ‘숨바꼭질’에 지친 표정이었다. 안 씨는 전화를 끊고 물을 들이켜며 말했다.
“서로 어려운 상황인데 노조가 안 되는 걸 되도록 해달라고 고집하면 노사 둘 다 계속 어려워질 겁니다.”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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