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모두 소중” 상대측 추도 ‘함께’
“여기가 김남훈 경사의 49재가 열리는 곳 맞나요?”
9일 오전 9시 서울 관악구 신림5동에 위치한 원불교 신림교당. 용산 철거민 참사 당시 진압작전에 참여했다가 숨진 김남훈 경사의 49재에 참석하기 위해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제단을 살펴보고 순간 어리둥절했다.
제단에 놓인 김 경사의 위패 옆으로 용산 참사 당시 사망한 철거민 5인의 위패가 함께 모셔져 있었기 때문.
그러나 교당 측의 설명을 들은 뒤 의문이 풀렸다. 김 경사의 아버지 김권찬 씨(55)가 교당 측에 아들의 49재를 열기 전에 철거민 사망자를 위한 위령제를 열어 달라고 부탁했다는 얘기였다.
김 씨의 의사를 존중해 원불교 신림교당은 김 경사의 49재를 열기 1시간 전에 철거민 희생자들을 차례로 호명하며 그 넋들이 극락왕생하기를 비는 위령제를 열었다.
아들의 죽음에 원인을 제공한 철거민 사망자들의 명복까지 빌어주는 김 씨의 의연한 자세에 교당을 찾은 사람들의 마음은 숙연해졌다.
같은 날 오후 7시 서울 용산구 한강로2가 용산 참사 사건 현장.
철거민 사망자들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한국불교종단협의회 불교인권위원회가 마련한 또 다른 49재에서도 김 경사의 49재와 똑같은 모습이 펼쳐졌다. 김 경사와 철거민 사망자들의 위패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김 경사도 철거민 사망자와 마찬가지로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았으니 함께 영혼을 달래 주는 것이 좋겠다”는 불교인권위원회 측의 제의를 철거민 사망자 측 유족들이 수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철거민 사망자 유족 측 관계자는 “정부와 경찰에 대한 성토, 재개발 문제와는 별도로 김 경사의 죽음에 대해선 우리도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49재가 끝나갈 무렵, 나란히 놓여 있던 철거민 사망자들과 김 경사의 위패는 불에 타 한 줌 재로 사라졌다. 죽음을 맞은 이유는 달랐어도 생명의 고귀함에는 차이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것 같았다. 경찰관 유족이든 철거민 유족이든, 그들에겐 모두 듬직한 가장이고 착한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우정열 기자 passi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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