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메트로마저 등돌려… 무너지는 민노총 “백약이 무효”

  • 입력 2009년 3월 13일 02시 58분


‘충격보고서’ 출판회 “이대론 안된다” 성토장

핵심사업장 기아차 산별거부 놓고 집안싸움

자체 토론회서도 “암덩이 퍼져 곧 사망위기”

《“백약이 무효한 상황이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의 한 관계자는 12일 노동운동의 큰 축인 민주노총이 처한 상황을 이렇게 표현했다. 지난달 초 조직 간부의 성폭행 미수사건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시작된 범사회적인 반(反)민주노총 정서는 산하 사업장의 잇단 반발에 이어 제3의 노총 건설 움직임으로 이어지고 있다. 인천지하철에 이어 서울메트로 노동조합이 민주노총 탈퇴 추진을 선언하는 등 민주노총의 전열이 무너지는 분위기다.》

○ 민주노총 성토장 된 출판기념회

이날 오후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고 권용목 민주노총 초대 사무총장의 ‘민주노총 충격보고서’ 출판보고회는 민주노총에 대한 성토장을 방불케 했다.

곽민형 전 민주노총 화학섬유연맹 수석부위원장은 “국내 노동운동은 우물 안 개구리에 불과하다. 이 책을 신호탄으로 새로운 노동운동이 일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옛 통일중공업 노무담당 이사를 지낸 문갑생 씨(60)는 “이런 보고서가 나왔다는 사실을 접하고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 민주노총 관계자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를 두고 뉴라이트전국연합의 한 관계자는 “진짜 환골탈태하고 싶다면 다른 사람들이 민주노총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여기 와서 봐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 내우외환 기아자동차

민주노총은 내부 조직 안에서도 위기를 겪고 있다. 핵심 사업장 중 하나인 기아자동차 노조와 ‘노-노’ 갈등을 빚고 있다.

기아자동차 노조원 200여 명으로 구성된 ‘기아차 노조 사수 대책위원회’가 상급기관의 산별노조 방침을 거부하고 나섰다.

대책위는 17일 조합원 총회 소집을 공고하기로 하고 노조 소속 변경에 관한 찬반 투표를 벌일 예정이다.

대책위는 이날 금속노조에 보낸 공개 질의서에서 “기아차 노조는 연간 31억 원에 달하는 조합비를 금속노조에 상납하고 선봉에서 투쟁해 왔으나 되돌아온 것은 정치 파업에 따른 임금 손실과 기업이미지 하락뿐이었다”며 “금속노조 집행부는 기아차 노조가 지역노조(산별노조)로 전환할 경우 장점이 무엇인지 공개 답변하라”고 요구했다.

기아차 노조 집행부는 대책위의 총회 소집 추진 방침에 대해 “금속노조와 기아차 지부를 무시한 규약 위반이며, 노조의 근간을 흔드는 중대한 도전행위이므로 좌시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 성폭력 진상조사 활동 종료

지난달 초 발생한 민주노총 간부의 성폭행 미수사건에 대한 2차 진상조사위 활동이 이날 종료됐다.

민주노총 성폭력사건 진상규명특별위원회는 지난달 19일부터 활동에 들어갔으며, 지난주 활동 시한을 일주일간 더 연장했다.

진상조사위는 13일 오전 기자회견을 열어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성폭력 재발 방지 권고안을 제출할 예정이다. 하지만 이미 관련자들이 다 사퇴한 상황이라 특별한 결과는 나오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 “리모델링 시기도 지났다”

민주노총 산하 사업장의 반발과 내외부의 비난 여론이 거센 가운데 민주노총은 이날 서울 영등포구 사무실에서 장장 10시간에 이르는 ‘혁신 대토론회’를 열었다. 민주노총에 우호적인 진보 인사들에게서 애정 어린 비판과 조언을 듣자는 취지.

그러나 이 자리는 오히려 현재의 민주노총이 단순한 위기 수준이 아니라 해체 직전의 상황임을 입증하는 자리가 됐다.

정윤광 노동전선 정책위원은 “민주노총은 내부 곳곳에서 이미 암이 자라고 있어 머지않아 사망할 위기에 다가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승우 민주노동자전국회의 부의장도 “민주노총은 경험이 부족한 일꾼과 전문성은 있으나 관료화된 간부들의 복합체”라며 “사람들은 ‘민주노총이 리모델링을 시도하는 시기는 끝났고 이제는 (헌) 집을 부수고 새집을 지어야 한다’고 지적한다”고 말했다.

또 노동자를 제대로 대변하지 않는 민주노총의 노동운동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김민영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민주노총은 정규직 노동자의 대변인으로 전락했고, 이익단체로서의 역할만 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뼈아픈 지적이 잇달았지만 70여 명의 참석자 사이에서는 별다른 반응이 나오지 않았다.

한 토론회 참석자는 “현재 위기의 원인과 처방을 조직 내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다”며 “다 알면서 이런 토론회를 갖는다는 것 자체가 이미 형식적인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이성호 기자 starsky@donga.com

“복수노조 해서라도 민노총 탈퇴

이념싸움 말고 복지위주로 가야”

정연수 서울메트로 노조위원장

12일 서울메트로의 16대 노조위원장으로 취임한 정연수 위원장(사진)은 “앞으로 노동운동은 국가발전과 경제의 발목을 잡는 부정적 세력이 아니라 국가발전을 견인하는 새로운 국민적 에너지로 발전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왜 민주노총을 탈퇴하나.

“서울메트로는 민주노총의 토대를 만들었다. 그러나 이념을 중심으로 한 잦은 파업과 분규는 오히려 사회에 걱정과 불안으로 다가갔다. 노동운동을 시민이 외면하고 있다. 민주노총이 이념갈등에서 해방되지 못하면 한계에 다다를 것이다.”

―투표를 통한 민주노총 탈퇴가 가능한가.

“현재 노조 규약에 따라 조합원의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민주노총에서 탈퇴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은 어렵다. 인천지하철은 25표가 부족해서 부결됐다. 우선 내부 논의 과정을 거쳐서 조합원을 설득하겠다. 2006년 조합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해 봤다. 조합원들은 변화를 요구하고 있었다. 곧 다시 한 번 여론 조사를 할 것이다.”

―복수노조제도가 민주노총 탈퇴의 차선책인가.

“복수노조가 허가되면 한 기업 내에 새로운 노조를 세울 수 있다. 새로운 노조가 기존 노조와 경쟁하면 조합원은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노조를 선택할 것이다. 경쟁력이 떨어지는 노조는 자연스럽게 쇠퇴하기 마련이다. 노조의 능력에 따라 노동계가 재편되는 것이 실물경제에도 부합된다. 또 복수노조는 다양한 형태의 노동운동이 발전할 수 있다.”

―앞으로 어떤 노동운동이 필요한가.

“노동운동도 경쟁력을 가져야 한다. 투쟁 일변도는 이제 안 된다. 조합원의 복지 위주로 생각해야 한다.”

―제3섹터 노동운동은 어떻게 추진되나.

“전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과 전국지방공기업노동조합연맹, 교원노조 등을 중심으로 제3섹터 노동운동을 추진하고 있다. 새로운 공공부문 노총이 생기면 개별 교섭이 필요 없다. 에너지가 줄어든다. 노사 교섭에 대한 인식도 달라질 것이다.”

이유종 기자 pen@donga.com


▲동아닷컴 이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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