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적 사고의 문제는 참으로 곤혹스러운 존재다. 시간을 갖고 독해를 하면 충분히 풀 수 있는 내용인데, 배점이 작고 시간도 많이 걸린다. 하지만 이 문제를 포기하고 가자면 다른 문제도 다 포기해야 한다. 지난 회에서 주로 ‘내용의 사실적 사고’를 알아보면서 ‘일치·불일치, 중심 내용의 파악’에 초점을 두었다면 이번 회에서는 ‘내용의 사실적 이해’에서 ‘정보 간의 관계’ ‘구조의 사실적 이해’에서 ‘전개방식의 파악’에 초점을 두어보자.》
이만기 엑스터디 언어영역 강사
우선 ‘정보 간의 관계’에 대해 알아보자. 한 편의 글 속에는 여러 가지 정보가 들어 있는데, 이 정보들은 서로 일정한 관계를 맺고 있다. 정보(情報)란 인지(認知)할 수 있는 모든 내용, 사건, 사실, 의견, 주장, 비유를 뜻한다. 이 유형에서는 같은 의미로 사용된 정보를 파악할 수 있는가, 지시어에 해당하는 정보를 찾을 수 있는가, 서로 다른 정보의 관계를 정리할 수 있는가를 평가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각 정보의 의미를 알고 그 사이의 공통점이나 차이점을 정리해야 한다. 특히 비유적으로 사용된 정보는 원관념을 파악해야 한다.
「<표1> 정보 간의 관계 출제유형
○ 위 글로 보아 ㉠과 ㉡의 관계를 바르게 설명한 것은?
○ ㉠과 거리가 먼 것끼리 묶인 것은?
○ 위 글의 내용으로 보아 이글루의 건축 과정에서 ㉡의 구실을 하는 것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 ⓐ, ⓑ, ⓒ 사이의 관계를 바르게 서술한 것은?
○ ㉠과 ㉡의 관계가 나타난 사례로 가장 적절한 것은?」
정보 간의 관계는 단어, 어구, 문장, 문단으로 이루어진다. 이러한 관계는 일반적으로 비교와 대조, 전제와 결론, 원인과 결과, 주장과 근거, 사실과 의견, 주지와 상술 등으로 말할 수 있지만, 어휘 간의 관계로 규정짓는 동의(同義), 유의(類義), 반의(反義), 상하(上下) 관계도 이에 해당한다.
다음은 다소 독특했던 정보 간의 관계를 파악하는 문제다.
「<예문> 2000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61∼65번 지문(홀수형)
‘수학’이라고 할 때 우리는 일반적으로 서양의 수학을 떠올린다. 그렇다면 동양에는 수학적인 사고방식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일까? 이러한 의문은 우리 선조들이 수학적인 문제 상황을 어떤 방법으로 해결했는지 확인해 풀 수 있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인 황윤석의 ‘이수신편(理藪新編)’에 있는 ‘난법가(難法歌)’의 문제 중 하나를 보자. “만두 100개에 스님이 100명인데, ‘큰 스님’에게 세 개씩 나누어 주고 ‘작은 스님’은 세 사람당 한 개씩 나누어 준다면 큰 스님은 몇 명이고 작은 스님은 몇 명일까?”
요즈음의 중고등학생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풀까? 아마도 많은 학생은 연립방정식을 세워 문제를 해결할 것이다. 즉 큰 스님의 수를 x, 작은 스님의 수를 y라 놓고 ‘x+y=100, 3x+⅓y=100’을 이용한다. 이러한 해법은 서양에서 들어온 것으로, 서양에서는 17세기경부터 쓰인 방법이다.
난법가에서는 이를 다음과 같이 풀이한다. 만두가 100개, 스님이 100명이니까, 큰 스님 1명이 먹는 3개와 작은 스님 3명이 함께 먹는 1개를 묶은 4개를 기본 단위로 삼는다. 이것은 만두 4개에 스님 4명이 대응한다는 데서 이루어진 발상이다. 만두 100개를 기본 단위인 4로 나누면 25가 나온다. 이 25는 3개씩 먹는 큰 스님의 수이면서 동시에 작은 스님이 먹는 만두의 개수다. 따라서 큰 스님의 수가 25이므로 작은 스님의 수는 75다.
창의적인 문제 해결의 예로 많이 이용되는 ‘계토산(鷄兎算)’ 문제도 ‘이수신편’에 소개되어 있다. “닭과 토끼가 모두 100마리인데, 다리를 세어 보니 272개였다. 닭과 토끼는 각각 몇 마리인가?” 이 문제는 이율분신(二率分身)이라는 방법으로 풀고 있다. 이율분신은 닭과 토끼가 모두 다리의 절반을 들고 있다고 가정한다. 그러면 닭은 다리가 하나, 토끼는 다리가 둘이 되고, 그 수는 모두 136이다. 여기서 다리 수와 총마릿
수의 차이, 곧 36은 토끼의 마릿수다. 왜냐하면 이율분신에 의해 닭은 다리 수와 마릿수가 같지만, 토끼는 다리 수가 마릿수보다 하나씩 많기 때문이다. 이율분신 역시 연립방정식을 세워 푸는 과정과 비교할 때 그 착상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다. 즉 ‘x+y=100, 2x+4y=272’에서 둘째 식의 양변을 2로 나누면 ‘x+2y=136’이다.
연립방정식의 해법에 익숙한 사람의 관점에서 보면 이 풀이는 상당히 낯설면서도 기발한 착상이다. 그런데 이러한 풀이에 대해 직관에만 의존했을 뿐 수식에 준한 논리적인 추론을 갖추지 못했다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 풀이과정에도 분
명히 가설과 논리적인 추론이 작용한다. 직관적으로 만두 4개와 스님 4명을 대응시킨 것과 이율분신의 발상을 한 것은 가설에 해당하며, 이를 토대로 합리적인 설명을 해 가는 것은 논리적 추론 그 자체다. 이러한 사례는 우리 식의 수학적 사고가 분명히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다만 그것이 현재까지 계승되지 못했을 뿐이다.」
제시문의 내용을 살펴볼 때 우리 선조들은 현실 생활과 밀접한 구체적인 문제 상황을 설정하고, 이의 해결에 수학적 사고를 적용시켰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우리 선조들의 수학적 사고에도 서양식 사고 못지않은 가설과 논리적인 추론이 작용한다는 점을 밝히고 현재까지 그것이 계승되지 못했음을 지적하고 있다.
여기서 출제된 다음 문항이 정보 간의 관계를 묻는 문항이다. 한번 풀어 보자.
「62. 난법가의 풀이와 연립방정식에 의한 풀이의 공통점은?
① 추론 과정이 있다.
② 적용 사례가 제한되어 있다.
③ 생활 경험에 기초해 푼다.
④ 개념을 기호로 바꾸어서 푼다.
⑤ 실험과 관찰의 방법을 이용한다.」
[풀이] 이 문제를 푸는 열쇠는 ‘직관에만 의존했을 뿐 수식에 준한 논리적인 추론을 갖추지 못했다고 비판’하는 문장에 대한 저자의 재비판에 있다. 즉 서양의 연립방정식 추론 과정이 ‘난법가’에도 있다는 점이다. 이는 제7문단 세 번째 문장 ‘그러나 이 풀이 과정에도 분명히 가설과 논리적인 추론이 작용한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②와 ③은 ‘난법가’와 관련 있고, ④는 연립방정식과 관련이 있다. ⑤는 ‘난법가’나 ‘연립방정식’ 어느 것과도 관련이 없다. 정답은 ①번이다.
다음은 ‘구조의 사실적 이해’이다. 여기서는 글의 구조 단위와 그 관계를 정확히 이해하는지, 글의 형식적 요소와 사실 관계를 정확하게 이해하는지 평가한다. 한 편의 글에서 논지(論旨)란 논의의 핵심 내용이다. 글쓴이는 글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논지를 더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정보를 조직하고 적절한 진술방법을 선택한다. 따라서 글을 효과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진술방식을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이를 ‘논지 전개방식의 파악’이라고 한다. 과거에는 문단의 논리적 구조를 묻는 문항도 있었으나 최근에는 전개방식(서술방식)을 주로 묻는다. 대체로 글을 써 나가는 부분적이고 구체적인 방법을 물으면 ‘서술방식’이고, 논리적인 흐름이나 골격을 물으면 ‘전개방식’이다.
이 유형은 글의 전개방식에 대한 기초 지식이 반드시 필요하다. 각 문단의 중심 내용을 파악하고 어떤 과정을 거쳐 그런 주장을 전개하는가를 정리해야 한다. 주로 글의 내용을 전개하는 기본 구조나 서술방식의 특징을 파악하는 형태로 출제되고 있으며 답지에 제시된 내용이 글의 전개방식을 파악하는 힌트가 될 수도 있다.
「<표 2> 구조의 사실적 이해 출제유형
○ 위 글의 글쓰기 전략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 위 글의 전체 논지 전개상 특징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 위 글의 서술상의 특징에 대한 대화로 바르지 않은 것은?
○ 위 글의 설명 방식에 해당하는 것을 <보기>에서 골라 바르게 묶은 것은?
○ ㈎∼㈒의 서술방식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다음은 이와 관련된 문제를 풀어보자.
「<예문> 200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40∼42번 지문(홀수형)
사람들은 어떤 결과에는 항상 그에 상응하는 원인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원인과 결과의 필연성은 개별적인 사례를 통해 일반화될 수 있다. 가령 A라는 사람이 스트레스로 병에 걸렸고, B도 스트레스로 병에 걸렸다면 이런 개별적인 사례로부터 ‘스트레스가 병의 원인이다’라는 일반적인 인과가 도출된다. 이때 개별적인 사례에 해당하는 인과를 ‘개별자 수준의 인과’라 하고, 일반적인 인과를 ‘집단 수준의 인과’라 한다. 사람들은 오랫동안 이러한 집단 수준의 인과가 필연성을 지닌다고 믿어 왔다.
그런데 집단 수준의 인과를 필연적인 것이 아니라 개연적인 것으로 파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가령 ‘스트레스가 병의 원인이다’라는 진술에서 스트레스는 병의 필연적인 원인이 아니라 단지 병을 발생시킬 확률을 높이는 요인일 뿐이라고 말한다. A와 B가 특정한 병에 걸렸다 하더라도 집단 수준에서는 그 병의 원인을 스트레스로 단언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스트레스가 병의 원인이다’라는 집단 수준의 인과는 ‘A가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병에 걸리지 않은 경우’나 ‘A가 스트레스를 받았고 병에 걸리기도 했지만 병의 실제 원인은 다른 것인 경우’ 같은 개별자 수준의 인과와 동시에 성립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개별자 수준의 인과와 집단 수준의 인과는 별개로 존재한다.
개별자 수준과 집단 수준의 인과가 독립적이라고 주장하는 철학자들은 두 수준의 인과를 서로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본다. 왜냐하면 개별자 수준의 인과가 지닌 복잡성과 특이성은 집단 수준의 인과로 설명될 수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가령 A의 병은 유전적 요인, 환경적 요인, 개인의 생활습관에서 비롯될 수도 있고 그 요인이 우연적이고 복합적인 과정을 거치며 발생될 수도 있다.
이에 대해 ㉠개별자 수준과 집단 수준의 인과가 연관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병의 여러 요인이 있다 하더라도 여전히 인과의 필연성이 성립된다고 본다. 개별적인 사례에서 스트레스와 그 외의 모든 요인을 함께 고려할 때 여전히 스트레스가 병의 필수적인 요인이라면 개별자 수준 인과의 필연성은 훼손되지 않으며, 이에 따라 집단 수준 인과의 필연성도 훼손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집단 수준의 인과’라는 철학적 주제에 대해 상이한 관점을 보이는 두 주장을 대비한 글이다. 두 관점은 각각 ‘집단 수준의 인과가 개별자 수준의 인과와는 별개다’라는 입장과 ‘두 수준의 인과가 서로 연관되어 있다’라는 입장이다. 전자는 집단 수준 인과를 개연적인 것으로 파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후자는 집단 수준의 인과가 개별자 수준의 인과와 필연성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을 스트레스와 병이라는 사례를 적절하게 활용하면서 제시하고 있다. 또 글쓴이의 주관은 개입하지 않고 중립적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다음 40번 문항이 서술방식을 묻고 있는데, 절충(折衷)이라는 말을 잘 모르면 오답을 고를 수도 있었다.
「40.위 글의 서술방식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1점]
① 논의된 내용을 종합하면서 새로운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② 상반된 견해에 대해 절충적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③ 이론의 장단점을 비교해 독자의 이해를 돕고 있다.
④ 대비되는 두 관점을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⑤ 일반인의 상식을 논리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풀이] 이 글에서는 집단 수준의 인과가 필연성을 지닌다고 믿는 관점과, 집단 수준의 인과를 개연적으로 파악해야 한다고 보는 관점을 대비시키고 있다. 그러면서 스트레스와 병의 인과 관계를 예로 들어 각각의 관점에 대해 뒷받침하고 있다. 따라서 정답은 ④번이다. ① 상반된 두 관점의 주장을 소개하는 데서 그칠 뿐, 내용을 종합하거나 새로운 주장을 제기하지는 않았다. ② 상반된 견해가 제시되어 있기는 하지만, 양자를 절충해 대안을 제시하지는 않았다. ③ 두 관점에서 각각 주장하는 바가 무엇인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으나, 그들의 장단점을 비교하지는 않았다. ⑤ 서두에 일반인의 상식을 제시하고 철학자들은 그 점에 대해 어떻게 보고 있는가를 설명한 글로, 상식에 대한 비판은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