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교과서 뒤집어읽기]천민 조선기녀 ‘당당한 사랑’

  • 입력 2009년 3월 16일 02시 52분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 감을 자랑마라… 명월이 만공산하니 쉬어 간들…”

천민 조선기녀 ‘당당한 사랑’의 원동력은?

○ 생각의 시작

조선시대 기녀는 남성중심의 가부장제가 지배했던 신분사회의 산물이다. 기녀는 양반의 유흥을 위한 ‘꽃’으로서 해어화(解語花·말을 알아듣는 꽃), 노류장화(路柳墻花·아무나 꺾을 수 있는 버들과 담장 밑의 꽃)라는 말로 표현되는 존재이다. 그래서인지 조선시대 기녀가 지은 시조의 상당수는 애정문제를 다루고 있다.

「묏버들 가려 꺾어 보내노라 님에게,

자시는 창(窓)밖에 심어 두고 보소서.

밤비에 새잎 나거든 나인가 여기소서.

[고등학교 문학, ‘홍랑’]」

먼 곳에 있는 임에게 사랑을 전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시조 속에서 만나게 되는 기녀들의 사랑은 각별하다. 그들의 삶 자체가 사랑인지라 스스로 제 사랑에 진솔하였으며 온몸, 온 마음으로 애정을 바쳤다.

○ 생각의 배경

기녀 시조가 남녀 간의 애정을 주된 관심사로 삼고 있는 것은 그들이 처해 있는 삶의 조건과 연관지어 이해해야 할 것이다. 기녀들은 가문과 혈통이 자기실현의 결정적 조건이었던 당시 사회에서 소외된 존재였다. 그들은 번듯한 가문의 아내, 며느리가 될 수 없었으며, 자식을 낳아도 적자(嫡子)로 인정받지 못했다. 남편의 출세와 자식의 교육에서 보람을 찾은 양반 부녀자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삶을 살아야 했으며, 평범한 남자를 만나 아들딸 낳고 오순도순 살아가는 것도 그들과는 무관한 삶이었다. 그들은 조선 신분사회의 최하계급인 천민(賤民)이었다. 기녀들이 자신을 선택해 준 남성과의 애정에 집착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 더 생각해 보면

그렇다면 기녀는 자신을 찾아주는 남성에 종속된 수동적인 존재이기만 한 것일까? 기녀들의 시조 중에는 남성과의 애정 문제에서 당당하고 주도적인 면모를 보이고 있는 작품도 있다.

「청산리(靑山裏) 벽계수(碧溪水)야 수이 감을 자랑마라

일도창해(一到滄海)하면 돌아오기 어려오니

명월(明月)이 만공산(滿空山)하니 쉬어 간들 어떠리.

[고등학교 문학, ‘황진이’]」

명월(明月)은 황진이의 기명(妓名)이기도 하다. 벽계수(碧溪水)는 상대방 남성을 지칭한다. ‘명월(明月)이 만공산(滿空山)하니 쉬어가라’는 것은 상대 남성에 대한 유혹을 은유한 표현이다. 황진이는 남성의 선택을 기다리기보다는 자신이 선택한 남성을 잡아두려는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 더구나 명월은 물보다 높은 곳에서 물을 굽어보고 있으니, 남성을 아래로 내려다보는 자신감도 엿보인다.

○ 이런 작품도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시대를 지배하던 가부장적인 사회 윤리에 반(反)하는 의식을 드러낸 작품도 있다.

「녹양홍료(綠楊紅蓼)에 계주(桂舟)를 느슨히 매고

일모강상(日暮江上)에 건널 사람 많기도 많다.

어즈버 순풍(順風)을 만나거든 혼자 건너가리라.

[‘계단(桂丹)’]

*녹양홍료(綠楊紅蓼): 푸른 버들과 붉은 꽃

*계주(桂舟): 계수나무로 만든 배

*일모(日暮): 날 저물 때」

계수나무로 만든 배와 건널 사람은 남녀관계를 비유한 것이다. ‘계주(桂舟)’는 자신을, ‘건널 사람’은 자신을 취하려는 뭇 남성들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곧 자신을 취하려는 남자들이 많아 괴로운 심정을 표현한 작품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순풍을 만나거든 혼자 건너가리라’는 표현은 남성에 의지하지 않고 세상을 살아가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 된다. 남성에 의존해 살아가는 것이 여성의 보편적인 삶이었던 조선시대로서는 아주 이례적으로 여성의 자주적인 삶의 의지를 보여준다.

○ 정리하면

조선시대 기녀의 시조가 남녀 간 애정 문제에 집중된 것은 당시 기녀들의 존재 방식으로 볼 때 당연한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그들의 사랑이 결코 소극적이거나 순종적이지만은 않았던 이유는 기녀가 남성중심의 조선시대의 산물이었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남녀 관계에 있어서 여염집 부녀자들에 비해 자유분방하고 자주적일 수 있었던 데에서도 찾을 수 있다.

전문규 청솔 아우름 통합논술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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