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아껴 여행가는게 유일한 낙이었는데…”

  • 입력 2009년 3월 16일 19시 18분


테러로 추정되는 폭발사고로 하루 아침에 가족을 잃은 유족들은 16일 침통한 분위기에서 시신 운구 등 수습대책을 마련하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이번 참사로 부인 김인혜 씨(64·서울 양천구 목동)를 잃은 윤구 전 문화일보 논설주간은 "예멘을 다녀온 친구들의 권유도 있고 마침 요르단 암만에 개인적으로 친한 가이드도 있어 문화유적 답사를 떠난 것"이라며 "돈을 아껴 여행가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던 사람이었는데…"라고 말을 잇지 못했다.

윤 씨는 "9일 아내가 인천공항에서 여행가방을 끌고 출국장으로 들어가는 뒷모습이 마지막이 돼 버렸다. 출발하기 전 예멘 날씨를 궁금해 하길래 인터넷으로 날씨까지 뽑아줬는데…"라며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윤 씨의 집 탁자 위에는 김 씨가 놓고 간 것으로 보이는 '예멘, 두바이 여행 안내문'이 놓여있어 보는 이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윤 씨는 "외교통상부에서 연락을 받고 예멘으로 함께 가겠다는 의사를 밝혔다"며 "아내의 시신을 예멘에 계속 놔둘 수 없어 밤늦게 출발하는 비행기라도 타고 현지로 떠날 계획"이라며 참았던 눈물을 떨궜다.

부부 동반으로 여행을 갔다가 참변을 당한 주용철(59), 신혜윤 씨(56) 부부가 운영하는 서울 송파구 암사동 부동산중개업소에는 주 씨 부부의 사망소식을 들은 이웃 주민들이 모여 안타까운 죽음을 애도했다. 일부 이웃 주민은 북받쳐 오르는 슬픔에 눈물을 짓기도 했다.

주 씨 부부가 운영하는 부동산 인근에서 25년 간 부동산을 해 왔다는 송모 씨는 "자녀가 없는 주 씨 부부는 함께 여행을 다니는 것으로 소일하던 사람이었다"며 "아직까지 가보지 못한 중동에 꼭 한번 가보고 싶다고 얘기하는 것을 들었는데 졸지에 사망 소식을 접하고 너무 놀랐다"고 말했다.

그는 "주 씨 부부는 금슬도 좋고 늘 성실한데다 여유 있는 티를 내지 않는 검소한 이웃이었다"며 "재개발 조합일과 상가번영회 일을 맡아 많이 바빴던 주 씨가 최근 일을 마무리 짓고 아내와 함께 휴식을 취하려고 떠났던 여행이 참변으로 끝났다"며 안타까워했다.

또 다른 사망자인 박봉간 씨(70)의 서울 강남구 삼성동 자택에는 오전부터 가족과 친지들이 모여서 외부와의 접촉을 끊은 채 침통한 분위기 속에서 시신 운구 등 대책을 논의했다. 박 씨 가족이 다니는 성당 교인들만이 출입을 허락받아 애도의 기도를 올리고 돌아갔다.

우정열기자 passi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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