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우리들의 ‘해결사’, 온라인 커뮤니티

  • 입력 2009년 3월 17일 02시 56분


“①풍선에 인형을 매달아 놓고 위로 던진 뒤 인형이 서서히 내려오는 순간 무릎을 꿇고 ‘사귀자’고 고백한다. ②‘좋아하는 애가 생겼어’라고 말한 뒤 곧바로 ‘그게 너야’라고 말한다. ③노래방에서 사랑을 고백하는 내용의 노래를 불러주고 노래가 끝나기 직전 ‘나랑 사귀어 줘’라고 외친다. ④그냥 휴대전화 문자를 보내 ‘사귀자’고 한다. 좋아하는 애한테 고백하려고 하는데, 여학생들아! 이 중에 너흰 어떤 프러포즈를 받고 싶니?”(아이디 leedhcf)

수험생 온라인 커뮤니티 ‘수능날 만점 시험지를 휘날리자(cafe.naver.com/suhui.cafe·사진)’의 고등학교 1학년 자유게시판. 좋아하는 여학생에게 고백하기 전 ‘여자의 심리’를 알고 싶은 한 남학생이 고민상담을 청해 왔다. 이 질문이 오른 지 3분 만에 댓글 15개가 달렸다.

“노래가 짱(최고)이야”, “독서실에서 함께 공부하고 나와 밤길을 걸으면서 조용할 때 고백하는 게 좋아” “대낮 고백은 비추(추천하지 않는다는 뜻)” 등 응원성 메시지가 대부분. “공부나 해”처럼 냉정한 답변도 있다.

“이 은혜 평생 잊지 않겠다”는 상담 의뢰자의 마지막 댓글이 달려있는 걸 보니 상담 결과가 만족스러운 모양이다. 이 커뮤니티에 가입한 회원은 81만 여 명. 하루 평균 방문자 수는 10만 명이 넘는다. 신속하게 다양한 해결책을 제시해 주는 온라인 커뮤니티야말로 자신들의 유일한 속 풀이 공간이라고 학생들은 입을 모은다.

고등학교 1학년 곽모 군(16·서울 동작구)도 일주일에 두 번 이상은 꼭 온라인 커뮤니티에 들어와 글을 남긴다. 수학 참고서 ‘개념원리 수학’과 ‘수학의 정석’ 중 어떤 걸 선택해야 할지 고민될 때, 우리 반 1등은 도대체 몇 시간이나 잘까 무지하게 궁금할 때처럼 시시콜콜한 문제도 ‘도와줘’란 제목으로 상담코너에 글을 올린다.

“요즘은 경쟁이 심해 반 친구들에게 쉽게 말 못하는 얘기들이 많아요. 여기(온라인 커뮤니티)에 들어와 고민을 올리고 실시간으로 다른 학생들과 댓글을 달면서 수다를 떨다보면 속이 후련해지죠. 익명이 보장되니 ‘뭐 이런 걸 고민이라고 하냐?’는 핀잔을 듣지 않아도 되고요. 공부에 도움이 되는 쏠쏠한 정보도 있어요.”(곽 군)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이 학교생활 전반에 대한 고민을 자유롭게 주고받는 온라인 커뮤니티. 하지만 같은 사이트 고등학교 2, 3학년 상담 코너에는 ‘먹구름’이 가득하다.

고등학교 2학년 이모 양(17·서울 서대문구)은 수도권 내 상위권 대학에 합격한 ‘멘터(mentor)’들로부터 고민 상담을 받을 수 있는 코너 때문에 사이트에 접속한다.

“답답한 마음에 모의고사 성적을 적나라하게 공개하고 어느 대학에 갈 수 있을지 상담해 달라고 한 적도 있어요. 외국어영역은 어떤 책으로 공부해라, ○○대학은 수시 면접이 유독 까다로우니 어떤 걸 준비해라 등 선배들이 상세하게 댓글을 달아줘서 감동할 때가 많아요. 부모님이나 선생님껜 (상담하자고 말하지) 못 하죠. 잔소리만 들을 테니까.”

이 양은 자기처럼 절박한 심정을 토로하는 학생들이 셀 수 없이 많다고 귀띔했다. 이제 ‘살려줘’ ‘미치겠다’ ‘망연자실’ ‘수포(수학 포기의 줄임말)’ 같은 제목이 달린 글은 굳이 클릭하지 않고도 어떤 내용인지 짐작할 수 있다고.

이 양처럼 상담코너에 자기 성적을 공개하는 학생이 한두 명이 아니다 보니 비슷한 성적의 학생끼리 온라인으로 쪽지를 보내 ‘공친(공부 친구의 줄임말)’을 맺기도 한다. 이들은 서로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온라인 친구’지만 서로의 학습정보를 공유하는 것은 물론 새벽까지 문자를 주고받으며 잠을 쫓아주기도 한다.

이혜진 기자 leehj08@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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