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을 지으려면 땅을 파야 하는데 때론 건물의 면적보다 수십 배가 넘는 땅을 파헤치기도 한다. 당연히 그곳에 살고 있는 동식물과 미생물은 생활터전을 잃는다. 무자비한 파괴행위가 되는 것이다.
높건 낮건, 크건 작건, 건물이 땅 위에 세워지면 그 건물 크기만큼 바람의 방향을 바꾸기 마련이다. 영원히 햇빛이 들지 않는 음영이 생기기 마련이다. 기(氣)의 흐름도 막힌다.
건축가가 건축물의 반환경적 요인들에 대해 터놓고 얘기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들은 항상 건물을 세운 뒤 더 나아질 인공환경에 대해 자랑해야 할 처지에 놓여 있다. 이 때문에 건축물의 환경 파괴에 대해서는 무시하거나 간과하거나 일부러라도 잊고 지내는 태도를 견지해 왔다.
개발지상주의 시대에는 건축가가 땅 1m²를 1m 깊이로 파면 그 흙 속에 몇 억 마리의 미생물이 죽는다는 이야기를 꺼내면 웃음거리가 되기 십상이었다. 경제개발에 우선하는 가치는 아무것도 없는 시대였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말하면 건축가는 환경 파괴에 대한 얘기를 해야 할 책임이 있다.
프랑스의 건축가 르코르뷔지에(1887∼1965)가 1923년 제창한 ‘근대건축의 다섯 가지 원칙’ 가운데 ‘필로티(pilotis)’라는 개념이 있다.
모든 건물이 땅 위의 일정 면적을 독차지하는 폐해를 최대한 줄이려고 건물을 기둥으로 받쳐 올려 일정 높이의 지상층을 그대로 비워두는 것. 그 대신 이 공간에는 사람들이 지나가고 바람과 햇빛이 통과해서 시선을 가리지 않게 하자는 주장이다.
르코르뷔지에는 자신이 마르세유에 지은 ‘유니테 다비타시옹’(1947∼1952)이라는 아파트 등 여러 건축물에서 자신의 필로티 이론을 실천했다. 대지와 건축이 만나는 접촉면을 최소화하자고 주장한 사람은 그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었다.
필로티 이론은 이후 아파트, 빌딩, 다세대주택 등 다양한 곳에서 광범위하게 쓰이는 일반적인 이론이 됐다.
필로티 이론이 새삼 크게 돋보이는 것은 숨 막히는 성냥갑 아파트 단지에서 느끼는 폐쇄공포증이 너무 큰 탓이다. 건축물은 자연과 조화롭게 세워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현대 건축물의 자연파괴를 미리 내다본 것이다.
건축이 자연의 침범자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인공환경만을 자랑만 할 것이 아니라 자연과 더불어 살 수 있는 지혜를 짜내야 할 것이다.
김원 ㈜건축환경연구소 광장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