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오후 2시, ‘베트남, 삶과 문화’전이 열리고 있는 국립중앙박물관 아시아관의 인도동남아실 앞. 베트남 전통의상 아오자이를 입은 여성 2명이 관람객들을 맞았다. 두 사람 모두 긴장한 듯 표정이 굳었다. 국립박물관 최초의 외국인 자원봉사 도슨트(전시 안내인) 즈엉느카잉꾸인(28), 응우옌티기흐엉 씨(28)다. 국립중앙박물관은 한국 거주자가 3만여 명에 이른 베트남 문화를 알리기 위해 지난달 베트남인 도슨트를 뽑았다. 다문화사회에 대비하는 박물관 정책의 하나다.》
모국 문화 알리기 위해 도슨트 지원
완벽한 설명 위해 수없이 반복 연습
“한-베트남 우호 가교 역할 하고 싶어”
꾸인 씨와 흐엉 씨는 한국인에게 베트남이 오랜 역사와 문화를 지닌 나라임을 설명하고 싶어 도슨트에 지원했다. 한국에 거주하는 베트남인에게 고향의 역사를 제대로 알리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베트남인들이 자국 역사를 잘 알아야 한국인에게 제대로 소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두 사람의 낯선 모습에 아이들이 몰렸다.
“어, 베트남 사람이다. ‘안녕하세요’가 베트남어로 뭐예요?”
꾸인 씨가 당황하지 않고 대답했다.
“베트남어로 안녕하세요는 ‘씬 짜오’란다.”
아이들의 명랑한 베트남어 인사가 박물관 인도동남아실에 울려 퍼졌다.
“씬 짜오!”
○ 미국인에게도 베트남 문화를
미국인 로저 베다드 씨(62) 부부가 인도동남아실을 찾았다. 흐엉 씨가 능숙한 영어로 이들을 안내했다.
13세기부터 시작된 베트남 비엣족의 독특한 전통공연인 수상인형극에 사용된 유물 설명을 듣는 베다드 씨 부부의 표정에 호기심이 가득하다.
베트남 전통 직물의 아름다움에 푹 빠졌다는 부인 케네디 씨(65)는 “한국에서 베트남 도슨트의 설명을 들을 줄 몰랐다. 기분 좋은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흐엉 씨는 베트남 외국어정보대에서 한국어를 전공하고 3년간 베트남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친 경험이 있다. 한국어를 더 잘 가르치고 싶어 2007년 한국에 와 숙명여대 대학원에 진학했다. 베트남어를 공부하는 한국 학생과 한국어를 공부하는 베트남 학생들의 동아리 ‘언어와 우정’ 회원이기도 하다.
“본래 베트남 역사와 유물을 누군가에게 설명할 정도로 잘 알지는 못했어요. 2월부터 한 달여 동안 베트남어, 한국어, 영어로 수없이 반복하며 연습했죠.”
흐엉 씨는 “서울 거주 외국인들에게 각종 서비스를 지원하는 서울글로벌센터에서 일주일간 베트남인을 대상으로 자원봉사를 하면서 한국이 외국인 거주자에게 신경 쓰고 있는 것에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 한국인과 베트남 문화의 만남
한국인 관람객이 늘어나자 꾸인 씨가 나섰다.
“비엣족이 썼던 바구니예요. 남자가 이 바구니 안에 옷을 넣어 여성에게 주면 결혼하자는 뜻입니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바구니지만 꾸인 씨는 실생활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는다.
꾸인 씨가 화려한 색채와 형태가 인상적인 베트남 도자기 앞에 섰다. “아시아에는 한국 중국 일본의 도자기만 있지 않다. 베트남 도자기도 오랜 역사와 높은 예술성으로 유명하다”는 그의 설명에 관람객들이 놀랐다.
베트남이 타이족, 비엣족 같은 54개 다민족으로 이뤄졌지만 공용어가 있어 모두 말이 통한다는 설명에도 사람들은 귀를 기울였다.
노예림 양(19·함양여고 3년)은 “부끄럽지만 처음에는 (꾸인 씨를) 한국 농촌에 시집온 주부로 생각했다”며 “백인은 한국을 찾아준 외국인으로 생각하고 동남아시아인은 노동자로 생각하는 편견에서 벗어나야겠다”고 말했다.
꾸인 씨는 베트남 호찌민인문사회과학대에서 한국어를 전공했고 2002년 9월 한국에 왔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석사과정을 수료한 꾸인 씨는 국립민속박물관이 전시를 통해 한국 민속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알리고 있는지를 주제로 논문을 쓰고 있다.
중국, 우즈베키스탄 등에서 의료봉사를 펼치는 단체에서 일하는 한국인 남편(35)과 지난해 결혼한 새댁이기도 하다.
꾸인 씨는 “한국에서 학생으로만 지내 크게 차별을 느낀 적은 없지만 학생이라고 밝히기 전 한국인의 눈빛과 밝히고 난 후의 눈빛이 달라지는 걸 자주 느꼈다”고 말했다.
○ 문화의 자부심을 느끼는 베트남인
이날 국립중앙박물관을 처음 찾은 응우옌티응옥깜 씨(26)도 흐엉 씨의 유물 설명을 들었다. 깜 씨는 국민대 경영대학원에 재학 중이다.
깜 씨는 시신을 매장한 지 3년 뒤 죽은 이의 영혼을 떠나보내는 의미가 담긴 고대 나뭇조각, 꾸라오짬 섬 인근의 침몰선에서 발견된 15세기 도자기를 유심히 봤다.
“실제 유물은 처음 봐요. 저는 300년 역사의 남부 호찌민 시 출신인데 이 유물들은 4000년 역사의 북부 하노이에 있는 국립박물관에 있죠.”
깜 씨는 “타향에서 우리 유물과 문화가 전시되는 것이 자랑스럽다”며 “베트남 사람들이 이곳에 많이 와서 배운 뒤 한국 사람들에게 우리 문화를 설명해주면 한국과 베트남이 더 가까워질 것 같다”고 말했다. 깜 씨는 이날 “나도 자원봉사에 동참하겠다”고 말했다.
국립중앙박물관 김영미 학예사는 “이를 계기로 박물관이 우리 것만 있는 곳이 아니라 베트남, 인도, 중국, 일본 등 이웃 문화도 알 수 있는 곳이라는 점을 널리 알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꾸인, 흐엉 씨의 첫 도슨트 도전은 이날 오후 4시 끝났다. “한국과 베트남이 서로 오해하는 부분을 정확히 알려주는 가교 역할을 하고 싶다”는 두 사람은 다음 주 토요일을 기약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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