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성이 국가경쟁력이다]<2>뉴질랜드 교실 혁명

  • 입력 2009년 3월 20일 03시 00분


뉴질랜드 오클랜드 콜윌스쿨의 1학년 쓰기 수업 장면. 휴일에 있었던 일을 한 명씩 일어나 발표하고, 급우들의 질문과 함께 토론이 이어진다. 오클랜드=서영표 동아사이언스 기자
뉴질랜드 오클랜드 콜윌스쿨의 1학년 쓰기 수업 장면. 휴일에 있었던 일을 한 명씩 일어나 발표하고, 급우들의 질문과 함께 토론이 이어진다. 오클랜드=서영표 동아사이언스 기자
3無 3多…맞춤형 눈높이 수업

이달 4일 뉴질랜드의 최대 도시 오클랜드 서부에 있는 콜윌스쿨의 한 수학시간. 아직 앳돼 보이는 7, 8학년(만 11, 12세) 남녀 학생 10명이 교실 앞쪽에서 교사를 중심으로 옹기종기 앉아 있다. 그 뒤로 10명의 아이들은 안락의자에 앉아 잡담을 나누고, 또 서너 명은 책상에 앉아 혼자서 뭔가를 열심히 풀고 있다. 교실 뒤편에서는 한 무리의 아이들이 보드게임에 몰두하고 있었다.

○ 일대일 평가… 수준별 그룹 나눠

어수선하면서 자유분방한 이런 교실 풍경은 뉴질랜드 교실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수학교사인 래윈 필브로 씨는 “학기 초부터 일대일 평가와 지속적인 관찰을 통해 한 반 학생들을 수준별 그룹으로 나눴다”고 설명했다.

교사는 수업 내내 각 그룹을 돌면서 수업을 진행한다. 교사는 수업마다 크게는 그룹별로, 작게는 개인별로 ‘리소스’라는 자료를 준비한다. 그 대신 학생들의 책상 위에는 통일된 교과서가 없다.

교과서만이 아니다. 교사가 교실을 돌아다니며 학생과 질문을 주고받아 수업을 진행하다 보니 ‘교탁’도 없다. 성적순으로 줄을 세우는 ‘중간고사’ ‘기말고사’란 개념도 없다. 그 대신 학생들은 토론을 많이 하고, 책을 많이 읽고, 칭찬을 많이 받는다.

뉴질랜드의 교육자들은 “교과서는 창의성 교육에 방해될 뿐이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1989년부터 대대적으로 시작된 뉴질랜드 교실 혁명은 이처럼 ‘3무(無) 3다(多)’에 기반을 둔 창의성 교육으로 요약된다.

○ 토론 통해 창의적 문제 해결

뉴질랜드 공교육은 ‘창의적인 문제 해결능력’을 가장 중요한 교육 목표로 삼고 있다. 지식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것. 일상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던져주고 토론을 통해 해결책을 찾는 수업이 일상적으로 이뤄진다.

이날도 필브로 교사는 분수 개념이 약한 한 그룹에 초코바를 나눠주며 ‘초코바 2개를 3명이 어떻게 나눠먹어야 할까’라는 문제를 냈다. 학생들은 초코바를 공평하게 나눠먹는 방법을 찾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분수 개념을 익히게 된다.

이 학교 로브 테일러 교장은 “교사의 역할은 답을 알려주는 게 아니라 알고 있는 지식을 총동원해 학생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도와주는 데 있다”고 했다.

이를 위해 학교는 ‘프로젝트’라는 숙제를 낸다. 학생 스스로 도서관을 찾고 사전과 인터넷을 검색하는 등 관련 내용을 조사한 뒤 수업시간에 발표하면서 함께 토론이 이뤄진다.

발표 뒤에는 따끔한 충고보다 칭찬이 이어진다. 창의성을 발휘하는 데 가장 중요한 자신감 고취에는 칭찬만한 약이 없다. ○ “도전하는 사람 존중하는 문화”

주한 뉴질랜드 대사관의 디온 번스 교육참사관은 “개인별 수준을 고려한 눈높이 학습과 일상화한 토론, 습관화된 자기주도학습과 독서야말로 창의성 교육의 바탕이자 뉴질랜드 교육이 강조하는 부분”이라고 말한다.

사회 분위기도 남과 다른 창의성을 장려한다. 뉴질랜드의 100달러 지폐에는 원자핵을 발견해 20세기 초 노벨 화학상을 받은 어니스트 러더퍼드의 초상이 새겨져 있다. 5달러 지폐에는 세계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정복한 에드먼드 힐러리, 10달러 지폐에는 처음으로 여성참정권을 얻어낸 케이트 셰퍼드가 그려져 있다. 테일러 교장은 “뉴질랜드는 과감하게 틀을 깨고 도전하는 사람을 존중하는 사회 문화가 있으며 이는 창의성을 강조하는 교육 철학과 연결돼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달 발표된 이화여대 김연화 박사의 졸업논문에 따르면 중학교 1학년 166명을 두 그룹으로 나눠 한쪽은 교과서를 주입식으로 가르치는 한국형 과학수업을, 다른 그룹은 뉴질랜드와 유사한 프로젝트 과제 중심의 수업을 11주간 받게 했다. 김 박사는 “연구 결과 뉴질랜드식 교실 수업에 참여한 학생들이 문제해결력 검사와 과학 흥미도 부분에서 더 높게 나타났다”고 밝혔다.

오클랜드=서영표 동아사이언스 기자 sypy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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