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지. 최치원 선생의 글처럼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 있어야 훌륭한 글이야!”
18일 오후 대구 북구 국우동 학남초등학교 교정. 아이들이 뛰노는 운동장 한쪽 향나무 아래에서 심후섭 교장(56)과 4학년생 서너 명이 책을 들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황은혜 양(11)이 최치원은 아주 옛날 사람인데 왜 지금도 유명한지 묻자 심 교장은 이같이 대답했다. 최치원이 당시 당나라에서 일어난 황소(黃巢)의 반란을 꾸짖는 내용인데, 글을 읽다가 황소가 놀라서 넘어졌다는 얘기가 전해 온다.
‘동문선’은 삼국시대∼조선시대의 뛰어난 문장가들의 글 4000여 편이 실린 고전이지만 정작 그 내용을 알기 어렵다. 심 교장은 이 가운데 26편을 뽑아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춰 최근 ‘어린이 동문선’으로 펴냈다.
학남초교는 63학급에 전교생이 1900여 명으로 대구에서 가장 학생 수가 많다. 2002년 개교 때는 36학급 규모를 예상했으나 주변에 아파트 단지가 속속 들어서면서 학생도 크게 늘었다.
고층 아파트에 둘러싸인 학교가 겉으로는 갑갑해 보이지만 학생들의 마음에는 ‘자연’과 ‘동심’이 가득하다. 무엇보다 유명한 아동문학가인 심 교장이 ‘살아있는 교과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4학년 류다연 양(11)은 “이렇게 멋진 시(詩)가 교장 선생님 작품이라니 깜짝 놀랐다”며 “교장 선생님을 보면 꼭 국어책을 읽는 느낌이 든다”고 좋아했다. 심 교장이 30여 년 전에 쓴 동시 ‘비 오는 날’은 7년 전 교육과학기술부의 4학년 국어교과서에 실려 전국의 초등학생들이 애독하는 시가 됐다. 평교사 때 비 오는 날의 교실 풍경을 그린 내용이다.
그가 그동안 쓴 책은 50여 권. 경북 상주시 사벌면의 소 이야기를 담아 널리 알려진 ‘할머니 산소를 찾아간 의로운 소 누렁이’도 2002년에 펴낸 그의 작품이다. 이런 책을 도서관에서 발견하고 교장실로 찾아와 ‘확인’을 하는 학생들도 있다.
그가 아동문학에 남다른 관심을 가진 것은 20대 후반 평교사 때 몸을 다쳐 고향인 경북 청송에서 6개월 동안 치료를 받던 일이 계기가 됐다.
교실에서 아이들을 만나지 못한 아쉬움에 틈틈이 글을 썼는데, 이때 쓴 작품 ‘비 오는 날의 아버지’가 신문사의 신춘문예에 동화로 당선돼 본격적인 글쓰기를 시작했다. 영화 ‘워낭소리’와 비슷한 농부와 소에 얽힌 이야기였다.
그는 얼마 전 받았던 교육자 대상의 상금으로 교정에 30년생 ‘연필향나무’ 세 그루를 심었다. 향이 좋고 바르게 자라는 연필향나무처럼 아이들이 컸으면 하는 바람에서였다.
조경선 교사(48·여)는 “교장 선생님은 좋은 글을 계속 쓰시고 아이들뿐 아니라 교직원들도 옆에서 글을 함께 읽을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했다.
학생들에게 4월은 ‘버들피리를 부는 계절’이다. 학교 옆 팔거천에 가득한 버드나무에 물이 오르면 심 교장이 만들어주는 버들피리로 아이들이 ‘자연을 노래하기’ 때문이다.
이권효 기자 bori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