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소득층 자녀 보금자리 된 서울 등원중
온돌공부방서 교사가 저녁식사 함께하며 보충지도
학력향상 뚜렷… 교장 “개천서 용 나는 사례 보여줄 것”
“얘들아, 저녁 먹자.”
19일 저녁. 이영주 선생님(51·여·영어)이 방으로 들어서자 방바닥에 배를 깔고 문제집을 풀던 민승이(15)가 얼른 일어나 선생님이 들고 있던 쟁반을 받아들었다. 쟁반에는 순두부, 동태찌개, 계란말이, 양배추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서울 등원중(강서구 등촌동) 방과후 학교인 ‘희망반’ ‘미래반’ 학생 20명의 저녁 시간이었다. 학생들은 매주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이렇게 학교에서 저녁을 먹는다.
등원중은 이번 학기에 서울지역 공립 중학교에서는 처음으로 온돌이 깔린 공부방을 만들었다. 온돌 공부방의 손님은 가정 형편이 어렵고 기초 학력이 부족한 학생들이다.
학생들은 공부방을 ‘집’이라고 부른다. 냉장고, 싱크대까지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이 ‘집’에서 영어, 수학 수업을 1시간씩 듣는다. 수업이 끝난 뒤에는 오후 8시까지 남아 숙제를 하거나 부족한 부분을 공부한다.
하굣길은 인근 강서경찰서 가양지구대 경찰관들이 함께한다.
민승이는 “공부방 담당 영어, 수학 선생님은 학생들이 인기투표로 직접 뽑았고 문제집도 학교에서 무료로 준다”며 “선생님이 차근차근 자세히 알려주신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공부방 인기도 더 높아졌다”고 말했다.
전교생 1139명인 등원중에서는 272명의 학생이 서울시에서 지원하는 예산으로 점심을 해결한다. 4명 중 1명꼴이다. 기초생활수급자 가정도 18.1%(206명)나 된다.
정홍배 교장은 2006년 부임 이후 교사들에게 “홈 헬퍼(Home Helper)가 돼 달라”고 당부했다. 저소득 맞벌이 부부가 많은 지역 특성상 성적 향상만큼 보육 기능을 강조한 것이다.
또 정 교장은 멘터링, 체험활동, 스터디그룹, (인성지도) 터미널을 통한 ‘멘체스터’ 교육을 강조했다. 학교 부적응 학생을 줄여 영국 명문학교처럼 발전시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정 교장은 “학교에 처음 왔더니 ‘우리 집은 가난하니까 어차피 나는 안 된다’고 미리 포기하는 학생이 많아 이대로 두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며 “지금도 공부 잘하는 아이가 많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인풋(input) 대비 아웃풋(output)을 비교하면 어느 학교에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했다.
지난해 3월 치러진 중학교 1학년 진단평가에서 이 학교 학생들은 평균 80.4점을 받았다. 서울지역 평균(83.4점)보다 3점이 떨어졌다.
하지만 3학년 학업성취도 평가에서는 기초학력 미달 학생의 비율(10.7%)이 서울 지역 평균(12.8%)보다 낮았다.
김옥희 교감은 “교사들이 똘똘 뭉쳐 생활지도에 주력한 결과 자연스레 성적이 올랐다”며 “멘체스터 교육과 함께 VIP 교육이 성공을 거둔 것”이라고 설명했다.
VIP 교육이란 학교는 비전(Vision)을 제시하고, 학부모에게는 감동(Impression)을 주고, 학생과 교사의 열정(Passion)을 키우는 교육을 통해 학생을 VIP로 길러내겠다는 뜻. 관할 강서교육청이 만든 개념이다.
정 교장은 “흔히 미래가 있어 희망이 있다고 하지만 나는 희망이 있어야 미래가 있다고 믿는다”며 “아직도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다는 사실을 꼭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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