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남편, 좋은 변호사가 되는 법을 배워갑니다."
정상수(32) 공익법무관은 지난 1년간 한국가정법률상담소에서 근무하며 송무를 전담했다. 소집 해제를 1주일 앞둔 24일 만난 정법무관은 여전히 잔뜩 쌓인 서류철 앞에서 바빴다.
정씨와 동료 법무관 2명을 제외하고 상담소에서 근무하는 상담위원 및 직원은 모두 여성이다. 급여 수준이 낮다보니 지원하는 남성들이 거의 없어서 공익법무관을 지원받고 있다.
처음 상담소로 발령이 났던 날. 환영의 술자리가 없어서 당황스러웠던 정씨는 여성들이 대다수인 조직문화에 적응하느라 좌충우돌했다고 한다. 상담소를 찾는 내담자도 주로 가정폭력이나 외도에 시달리는 여성들이다. 남성으로서 이런 '가정의 위기'를 보는 시각은 어떨까?
그는 "자녀를 서로 맡지 않겠다며 이혼 소송을 하는 경우가 가장 괴로웠다"고 한다. 보통 남편은 자녀를 포기하고 부인은 위자료는 안 받아도 양육권을 갖겠다고 하는데, 30건 중 1건 정도는 양친 모두 자녀 키우기를 거부한다. 이럴 경우 판사가 일방을 지정해서 양육권을 준다.
"도대체 아이들이 무슨 죄인지…. 부모로서 공감대를 갖게 되죠. 처음 상담소에 왔을 때는 사실 상담 내용을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가슴에 와 닿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아기가 태어난 이후에는 아기를 혼자 키우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이혼을 하기가 왜 망설여지는지 짐작이 가더라고요."
여성의 권리가 많이 향상되었다지만 경제적으로 자립하지 못한 여성들은 여전히 약자다. "몽골에서 온 이주여성이 남편 폭력에 시달리다 초등학생 자녀를 데리고 상담소를 찾아 오셨어요. 여름에 집을 나와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겨울이 왔는데도 여전히 얇은 반팔 차림이셨어요. 추위에 오들오들 떠는 아이가 안쓰러워 잠바를 한 번 사 입힌 적이 있네요."
같은 남성이 보기에도 참 나쁜 남편들도 있다. 바람이 나서 집을 나간 뒤 오히려 부인에게 이혼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가 그렇다. 외도 사실은 감춘 채 부인의 귀책사유를 찾아내 위자료, 재산분할까지 요구하기도 한다.
내담자와 1~2시간씩 상담을 하다 보니 여성의 심리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기도 했지만 어떤 변호사가 되어야 할지도 길이 보였다.
"승소라는 결과도 중요하지만 소송 과정에서 의뢰인의 마음을 치유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법에 기대려는 분들은 상처가 많은 분들인데 '힘내세요' '웃으세요' 이런 따뜻한 말 한마디에 더 고마워하시더라고요. 변호사가 선임 전까진 잘 해주다가 소송이 진행되면 전화 한통이 어렵다는 불만이 많아요. 소송 과정에서 상처가 덧나는 일은 없어야겠죠."
정씨는 내달부터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하고 가족법 관련 소송을 전문으로 할 계획이다. 이혼전문변호사라면 인식이 좋지는 않지만 전문성이 필요한 분야이기 때문이다.
"이혼 소송은 보통 민사소송과 다르게 일방이 아니라 양쪽이 잘못한 경우가 많아요. 때문에 잘잘못을 따지기 보다는 가능하면 조정을 하려고 하죠. 자녀를 키우다 보면 부모들이 계속 만나야 하는데 원수가 되어 끝나면 자녀도 한 쪽 부모와 인연이 끊기게 되거든요. 소장도 쓸 때 가능하면 상대방 잘못을 듣기 좋게 써 주려는 노하우가 필요하죠."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살면 좋겠지만 누구에게나 위기의 순간은 찾아 올 수 있다. 정씨는 현명하게 이혼하려면 자립능력을 기르라고 조언했다. 몰래 비상금을 모아두거나 취업 준비를 하는 것이 우선이다.
"현실적으로 돈을 벌고 자녀를 키울 능력이 안 되어 맞고 살면서도 이혼 할 엄두를 못 내시는 분들이 있어요. 옆에서 보고 있으면 안타까운 일이죠."
좋은 변호사, 좋은 남편, 좋은 아빠 되기 중에 어떤 것이 가장 어려울까? 정씨는 '좋은 남편'이라고 대답한다. "좋은 남편은 좋은 아빠, 좋은 변호사 더하기 무언가인 것 같아요. 지난 1년은 제게도 어떻게 가정을 꾸려가야 할지 스스로 성찰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