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대에 맞은 상처’ 항소심서 아물다

  • 입력 2009년 3월 28일 02시 59분


쇠고기 시위서 뇌진탕 전경

부대복귀 안해 1심서 실형

모친 “전과자 안되게 선처를”

2심서 결국 ‘선고유예’ 받아

27일 오전 10시 서울고등법원 403호 법정. 아들은 피고인석에 앉았다. 참관인석에서 그를 바라보던 어머니는 두 손을 연방 오므렸다 폈다. 시위 진압에 나섰다가 집단 폭행까지 당했으나 전과자가 될 위기에 놓인 아들의 운명이 곧 결정될 참이었다. 재판장인 이광범 부장판사는 이에 앞서 13일 열렸던 1차 공판에서 방청석에 앉아 있던 어머니 최모 씨(47·여)를 불러 일으켜 세웠다.

“피고인과 똑같이 생긴 분이 참관인석에서 열심히 듣고 있어 어머니인 것 같은데 할 말이 있으면 해 보시죠.”

최 씨는 한참을 머뭇거리다 말문을 열었다.

“아들 인생에 ‘빨간 줄(전과)’이 그어지지 않게 해 주십시오. 국가의 부름을 받고 시위대 앞에 서야 했던 아들이 새 출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그로부터 2주일이 지난 27일. 이 부장판사는 선고유예 판결을 내렸다. 선고유예는 일정기간이 지나면 형의 선고가 면제되는 판결로 형이 집행되지 않기 때문에 사실상 무죄 선고에 가깝다.

이 부장판사는 “사고 후유증이 심각한 데다 고의로 복귀를 피한 것 같지는 않다”며 “피고인이 군 생활을 잘해 상관들이 처벌을 원치 않고, 공무원이 되고 싶은 꿈도 꺾고 싶지 않았다”고 밝혔다.

방청석에서 한 명씩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최 씨를 응원 나온 전·의경들의 어머니들이었다.

지난해 11월 열린 1심에서 최 씨의 아들 이모 씨(22)는 부대 미복귀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사건의 발단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시위가 한창이던 지난해 6월 말이다.

당시 서울지방경찰청 306전경대 상경이었던 이 씨는 집회 통제를 위해 서울 중구 태평로에 투입됐다. 그러나 그날 새벽 이 씨의 중대원 20여 명은 진압 도중 시위대에 둘러싸여 쇠파이프로 집단폭행을 당했다. 이 씨도 헬멧이 깨지고 어금니 두 개가 부러질 만큼 얻어맞은 뒤 실신했다.

뇌진탕 진단을 받은 이 씨는 3주 뒤 부대에 복귀했으나 두통과 단기기억상실 등 후유증이 계속됐다. 치료차 외박을 나와서도 집에서 잠만 자며 나흘을 보냈다. 이 씨는 부대에 들어간다며 집을 나섰다 행방불명됐다.

최 씨는 실종된 아들을 찾기 위해 지하철 폐쇄회로(CC)TV를 샅샅이 뒤지고 지하보도에서 자고 있는 노숙자들을 들추며 서울 곳곳을 헤맸다.

아들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고 결국 부대 미복귀자로 고발됐다. 그리곤 경찰이 수사에 나서자 한 달 만에 인천의 한 PC방에서 붙잡혔다. 이 씨는 “지하철에서 잠이 들어 복귀시간을 놓쳤고, 부대에 돌아가려 노력했지만 촛불 진압작전에 나갈 것이 두려웠다”고 해명했지만 결국 유죄판결을 받았다.

이때부터 법정공방이 시작됐다. 최 씨는 9년 전 남편과 사별한 뒤 생계유지를 위하여 해 오던 보습학원 강사 일도 할 수 없었다. 다행히 이 씨의 소속 기동단 간부 87명이 법원에 탄원서를 내주고 전·의경 어머니 300여 명이 육성녹음 CD를 재판 때 쓰라며 건네는 등 도움의 손길이 이어져 힘겨운 투쟁을 해낼 수 있었다.

이 씨는 11대 독자로 군대에 갈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남들 앞에 당당하고 싶다며 전경으로 입대했다. 부상 후 의가사제대를 하라는 주변의 만류에도 이 씨는 “군생활을 잘 마무리하고 싶다”며 버텼다. 그렇게 이 씨는 만기를 채우고 18일 제대했다. 이제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은 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할 계획이다. 2심 판결로 억울함은 덜었지만 최 씨의 아들 걱정은 여전하다.

“아프다는 얘기를 한 번도 안 하던 아이가 요즘엔 ‘머리가 멍하다’, ‘아프다’는 말을 달고 살아요. 나라에서 불러 시위대 앞에 선 사람들이 평생 후유증을 안고 살아가는 일은 이제 없어야 되지 않을까요.”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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