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탁과 대가’라는 일반적 로비관행과 거리 멀어
검찰 “정관계 로비사건 아닌 무차별 돈살포 사건”
“박연차 리스트 사건은 ‘정관계 로비의혹 사건’이 아니라 ‘무차별 돈 살포 사건’이다.”
태광실업 박연차 회장에게서 돈을 받은 인사들 가운데 26일 이광재 의원까지 모두 6명이 구속되면서 드러난 박 회장의 금품 제공 스타일을 두고 검찰 안팎에서는 이런 의견이 나오고 있다.
▽힘 있는 곳에 돈 살포=박 회장이 청와대 고위 인사와 국회의원 판사 검사 경찰 등 상대를 가리지 않고 돈을 뿌렸다는 의혹이 점차 검찰 수사로 확인되고 있고 대개의 경우 ‘일단 뭉칫돈을 찔러주는’ 식의 금품 제공 수법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박 회장이 자신의 사업에 도움을 받고 자신의 지인들에게 이익을 주기 위해 접근이 필요한 대상은 대개 인사권을 가진 고위 관료나 인허가 권한을 가진 공무원들이다.
따라서 박 회장이 이들에게 특정한 청탁을 대가로 뇌물을 건네는 일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는 범행이지만 여야 정치인과 검사 판사 경찰 등에게 거액을 무차별로 뿌린 것은 ‘청탁과 대가’라는 일반적인 로비 관행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검사들은 말한다.
박 회장의 이런 성향은 ‘자기만족’을 위한 행동이란 해석도 나온다. 정치인이나 검사 판사 경찰 등 힘 좀 쓰는 인사들에게 서슴없이 거액을 건네며 친분관계를 유지하고 이것을 주위 사람들에게 알게 해 자신의 ‘위세’를 자랑하려 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유무형의 도움도 받았을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박 회장의 도움을 받은 인사들은 박 회장을 적극적으로 돕지는 않더라도 나서서 방해하는 일은 없었다고 한다.
유력 인사들에게 아무 이유 없이 뭉칫돈을 건네는 박 회장의 특성은 상대방을 편하게 했다는 의견도 있다.
한 검찰 간부는 “특별한 대가를 바라지 않고 거액을 선뜻 건네는 박 회장의 스타일은 돈을 받는 상대방을 오히려 부담 없게 만들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통 큰 씀씀이로 유명=박 회장의 상식을 벗어난 돈 씀씀이는 10여 년 전부터 부산경남지역 지인들 사이에서 공공연한 화제였다. 지인들끼리의 술자리에서는 박 회장의 돈 씀씀이가 단골 안주가 되기도 했다.
지연, 사업 관계 등으로 그를 오랫동안 만나온 지인들은 그의 돈 살포 행위가 ‘영웅심리’ 또는 ‘사업가 특유의 투자 본능’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27세 때 신발사업을 시작해 36세 때 지역재벌 소리를 듣고 50세에 중국과 베트남에 현지법인을 설립하는 경제계 거물로 성장하면서 쌓은 재력을 ‘힘’을 가진 고위 인사들에게 종신보험 형태로 투자했다는 것이다.
사업가 A 씨는 “초등학교 학력이 전부이지만 대한민국 최고 엘리트 집단과 허물없는 관계를 맺는 걸 은근히 즐기는 것 같았다”며 “‘권력자보다 내가 강하다’는 일종의 영웅심리를 돈으로 해결한 것 같다”고 표현했다.
같은 고향 출신인 B 씨는 “권력은 유한하지만 자신의 신발사업은 무한하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고 말했다.
박 회장의 전방위 로비가 국내에만 국한돼 있는 게 아닐 것이란 주장도 있다. 사업가 C 씨는 “검찰 수사가 한국 정치권과 권력집단을 겨누고 있지만 그의 사업체가 있는 베트남과 중국에서도 전방위로 활동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박 회장이 베트남의 유력 인사들에게도 고가의 롤렉스 시계나 용돈을 건넸다는 소문이 널리 퍼져 있다”고 말했다.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
윤희각 기자 tot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