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자 인간이 ‘지금 여기’서 해야 할 일은?
○ 생각의 시작
인생은 유한(有限)하다. 반드시 끝나야만 한다. 그래서 슬프다.
『“북으로 바라보니 평(平)한 들과 무너진 언덕에 석양이 쇠한 풀에 비치었는 곳은 진시황의 아방궁이요, 서(西)로 바라보니 슬픈 바람이 찬 수풀에 불고 저문 구름이 빈 뫼에 덮은 데는 한 무제의 무릉이요, 동으로 바라보니 분칠한 성(城)이 청산을 둘렀고 …(중략)… 이는 현종 황제가 태진비로 더불어 노시던 화청궁이라. 이 세 임금은 천고 영웅이라. 사해(四海)로 집을 삼고, 억조(億兆)로 신첩(臣妾)을 삼아 호화 부귀 백 년을 짧게 여기더니 이제 다 어디 있나뇨?”
[고등학교 국어(상) ‘구운몽’]』
양소유가 그의 여덟 부인들 앞에서 인생무상을 토로하는 대목이다.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던 황제들도 결국 죽고 말았듯이, 나도 언젠가는 죽고 말 것이다.” 그는 인간이라면 어차피 누구나 죽는다는 것을 생각하면 인생은 덧없고 허무한 것이라고 말한다.
○ 뒤집어 보기
그런데 인간만이 유한한 존재일까? 소동파의 적벽부를 보면, 어느 객(客)이 “자연은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이 존재하는데 인생은 유한(有限)하므로 허무하다”는 말을 한다. 그 말을 들은 화자(話者)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손(客)도 저 물과 달을 아는가? 흘러가는 물은 이미 가버렸다 할 수도 있지만 가지 않았으며, 달이 차고 비지만 결국은 줄고 늚이 없으니, 변한다고 보면 천지(天地)도 한순간일 수밖에 없으며, 변하지 않는다고 보면 사물과 내가 다 다함이 없으므로 모두 영원한 존재일 것이니, 또 무엇을 부러워하리오.”
[6차 교육과정 국어(하) ‘적벽부’]』
변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모든 것이 유한한 것이겠지만, 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보면 자연이든 인간이든 모두 다함이 없다는 말이다. 따라서 생의 허무를 걱정하지 말고 삶을 즐기면 되는 것이다.
○ 또 다른 생각
삶이 유한하다는 생각은 ‘허무’나 ‘즐기자’는 마음으로만 이어지는 것이 아니다. 마치 시한부 인생을 사는 사람이 남은 시간을 치열하고도 아름답게 보내기 위해 노력하듯이, 영원할 수 없는 인생이므로 가치 있고 의미 있는 무언가를 찾으려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내 장차 장자방의 적송자(赤松子) 좇음을 효칙(效則)하여 집을 버리고 스승을 구하여 남해를 건너 관음(觀音)을 찾고, 오대(五臺)에 올라 문수(文殊)께 예를 하여 불생불멸(不生不滅)할 도를 얻어 진세(塵世) 고락(苦樂)을 뛰어나려 하되….(후략)”
[고등학교 국어(상) ‘구운몽’]』
앞에서 언급한 ‘구운몽’의 등장인물 ‘성진’의 말이다. 한(漢) 나라의 장자방이 신선술을 배우려고 적송자를 따라갔듯이, 자신도 불도를 배워 영원한 깨달음을 얻겠다고 말한다. 이것이 바로 ‘삶은 영원할 수 없는 것이기에 의미 있는 것을 찾으려는 모습’이라 할 것이다. 인생무상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해서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어떻게 보면 위험한 일일 수 있다.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해 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인생에 대해 허무하게 접근하게 만드는 생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주어진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자세다. 비록 마지막에는 재만 남는다고 하더라도 화려하게 타오르는 불길은 얼마나 아름다우며 매혹적인가.
○ 남은 생각
이런 여러 생각들은 도대체 왜 생기는 것일까? 이는 역설적(逆說的)으로 삶이 유한하기 때문이다. 유한하지 않다면, 도대체가 유한하지 않다는 생각을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유한함이 주는 고통이, 그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욕망이, 고통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모색해 보는 몸부림이, 이와 같이 여러 종류의 생각을 만들어낸다. 다시 말해 부족함이 새로운 인식의 시작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결핍이나 고통에 쉽게 좌절하지 않고, 그것의 새로움을 발견하는 계기로 삼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정근의 청솔 아우름 통합논술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