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人 싱글맘 찾아 다시 왔지만
우리말 서툴러 조용히 수학 공부만
2000년 태어난 민지(가명)는 막 한 살이 됐을 때 엄마의 고향인 필리핀으로 보내졌다. 폭력을 일삼는 한국인 아빠에게서 엄마가 도망친 직후의 일이었다. 갓난아이까지 딸린 필리핀인 싱글맘이 한국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민지 엄마는 눈물을 참고 민지와 생이별을 했다. 필리핀 외가에서 6년을 지낸 민지는 2007년에야 한국에 돌아왔다.
필리핀 출신 주리시 바젠팅 씨(35)와 딸 강민지 양(9). 필리핀에서 지내는 동안 아무런 교육도 받지 못한 민지는 한국어와 영어가 모두 서툴렀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민지가 가장 좋아하는 과목은 수학. 한국말이 서툴러도 따라갈 수 있는 몇 안 되는 과목이기 때문이다.
29일 오후 서울 성북구 정릉동의 한국수양부모협회 사무실에선 ‘다문화·싱글맘협회’가 마련한 다문화가정의 싱글맘 자조 모임이 열렸다.
이름과 나이를 묻자 민지는 부정확한 한국말 발음으로 이름과 나이만 말해주고 엄마 등 뒤로 재빨리 숨었다. 바젠팅 씨는 한숨을 내쉬었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밤마다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아이 교육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어요.”
국내에 거주하고 있는 싱글맘 결혼이주여성의 현실이다. 똑같은 싱글맘이어도 한국인 싱글맘은 자치단체 등을 통해 매달 50만∼60만 원 정도를 지원받지만 외국 국적의 싱글맘에게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이들은 한국인 남편과 결혼하면서 체류허가만 얻었을 뿐 한국 국적은 취득하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문화·싱글맘협회의 한 관계자는 민지를 바라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한국 아이가 엄마 국적 때문에 아무 지원도 받지 못하다니, 참 어이없는 일 아닌가요? 최소한의 교육 기회조차 박탈당하는 현실은 하루 빨리 개선돼야 할 텐데….”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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