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정기국회까지 파문 계속될수도” 우려
‘박연차 리스트’가 여의도 정가를 강타하면서 야당은 물론이고 여당의 고민도 깊어가고 있다. 연루 의원이 당초 예상보다 많다는 얘기가 흘러나오는 데다 조만간 정대근 전 농협중앙회장에 대한 비자금 수사가 시작될 경우 사정 정국이 장기간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1일 검사 출신 한나라당 초선 의원은 “검찰 측에 알아본 결과 박연차 리스트에 포함된 정치권 인사가 당초 예상보다 상당히 많은 것 같더라”며 “여야가 심각한 내상(內傷)을 감수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당 지도부도 이 같은 사실을 알고 있지만 현재로선 뾰족한 대책이 없어 사태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고 전했다.
당내에서는 박연차 리스트에 ‘정대근 리스트’까지 더해지면 자칫 정치권이 초토화될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정 전 회장이 8년간 농협 회장으로 있으면서 세종증권 인수, 휴켐스 매각, 서울 서초구 양재동 하나로마트 용지 매각 등 이권 사업의 중심에 있었기 때문에 정치권에 대한 로비도 광범위하게 이뤄졌을 가능성이 있다.
검찰 소식에 정통한 한나라당의 한 고위 인사는 최근 당 지도부에 “6월까지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에 대한 수사가 마무리되면 바로 ‘정대근 리스트’ 수사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적어도 9월 정기국회 전까지는 지금 같은 상황이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정대근 리스트는 박연차 리스트보다 폭이 넓고 깊은 것 같다”고 말해 정치권이 끝없는 혼란에 빠져들 수 있음을 시사했다. 뇌물이나 비자금 사건은 실체가 드러나기 전에 다양한 형태의 ‘의혹 논쟁’이 벌어지는 경우가 많아 정가는 바짝 긴장하는 눈치다.
한나라당 김무성 의원은 이날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중진 연석회의에서 검찰과 언론에 강한 불만을 제기하며 본인의 결백을 주장했다. 그는 “그동안 검찰이 수사 방향을 어떻게 잡았기에 생사람 잡는 각종 리스트만 난무하느냐”며 “지금부터 공개수사를 하라”고 말했다. 같은 당 허태열 의원도 본인의 연루설과 관련해 “검찰에서 당당하게 저를 불러 해명을 듣든지 해 달라”며 “생사람 잡는 일이 지금처럼 장기간 진행돼선 안 된다”고 밝혔다.
이번 사태로 여야 간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당장 민주당은 표적사정, 공안정국 등을 주장하며 반발하고 있어 정상적인 국회 운영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여당의 ‘청와대 눈치 보기’가 심해질 것이라는 우려도 없지 않다.
고기정 기자 ko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