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면 파우더’ 피해 소비자들 집단소송 움직임
석면에 오염된 탈크가 화장품 및 제약업체 300여 곳에도 판매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식품의약품안전청이 5일 밝혔다. 300여 곳은 모두 덕산약품공업에서 탈크를 구입한 업체이다. 유무영 식약청 의약품안전정책과장은 “덕산약품공업은 국내 탈크 수요의 20% 이상을 수입하고 있다”며 “이 회사의 탈크를 사용한 화장품 업체의 최종 명단 확인이 끝나는 6일 오전 중에 판매금지 조치를 내릴 예정”이라고 말했다. 의약품에 대해서는 추가 검토 후 판매금지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화장품·의약품 탈크 함유=식약청은 우선 탈크를 다량으로 사용하는 제품을 중심으로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탈크는 베이비파우더뿐 아니라 가루분 형태의 화장품에도 사용되고 의약품 제조 과정에서 의약품이 서로 달라붙지 않도록 하는 용도로 쓰인다. 전체 원료에서 탈크가 차지하는 비중은 베이비파우더가 70∼90%, 페이스파우더가 40∼50%에 이른다. 약품에 들어 있는 탈크의 함량은 알약 무게의 1%가량으로 미미한 편이다.
식약청은 “식품 원료로 공급된 탈크에서는 지금까지 석면에 오염된 사례가 확인되지 않아 위해(危害) 우려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탈크는 껌이나 사탕이 포장지에 달라붙지 않도록 하는 데 쓰인다.
한편 식약청은 이미 5년 전 외부 기관에 의뢰한 용역보고서를 통해 탈크의 위험성을 알고도 이제까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국회 보건복지가족위 소속 한나라당 신상진 의원은 “2004년 김창종 중앙대 약대 교수가 식약청에 제출한 연구용역보고서에서 탈크의 위험성이 지적됐으나 식약청이 이를 5년이나 방치했다”고 주장했다.
▽리콜 원칙 없어 소비자 혼란=탈크가 들어간 제품에 대한 리콜이 원칙 없이 이뤄지는 등 사후처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정부 당국의 지침 없이 제조업체에서 자율적으로 시행하고 있어 환불 및 반품을 원하는 소비자들이 큰 불편을 겪고 있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보령메디앙스, 한국콜마 등 석면 오염 탈크가 검출된 베이비파우더 제조업체들에는 제품 회수 및 환불을 요구하는 소비자들의 상담이 폭주하고 있다. 이번에 누크베이비파우더에서 탈크가 검출된 보령메디앙스에 1일부터 5일 현재까지 접수된 환불 및 리콜 요청 건수는 6100여 건이다. 보령메디앙스 측은 “24시간 상담센터를 가동하며 석면이 검출되지 않은 제품으로 교환해 주거나 구매금액 전액을 환불해 주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일부 업체들은 제대로 리콜을 해 주지 않거나 책임을 회피하는 등 불성실한 태도로 일관해 소비자들로부터 빈축을 사고 있다. 특히 제조사와 판매사가 다른 경우에는 서로 상대방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어 소비자들의 혼란이 커지고 있다. 베비라베이비파우더 제품을 구입한 주부 김수경 씨(34)는 “제조사에 문의하니 ‘관련 기준에 맞춰 생산했을 뿐 우리도 모르니 산 곳에 가서 문의해 봐라’는 무책임한 답변을 들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석면 베이비파우더로 피해를 본 소비자들의 집단소송 움직임도 본격화되고 있다. 환경운동연합에 따르면 석면피해신고센터를 연 3일부터 5일 현재까지 접수된 피해건수는 220여 건이다. 환경운동연합은 피해자들의 피해 실태를 조사하고 소송인단을 모아 제조사 등을 상대로 정신적 충격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낼 방침이다. 이에 앞서 환경운동연합은 6일 식약청과 제조사들을 직무유기로 검찰에 고발할 예정이다.
김현지 기자 nuk@donga.com
정효진 기자 wiseweb@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