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 포근한 봄이면 고교 3학년 수험생은 괴롭다. 시도 때도 없이 쏟아지는 졸음 때문이다. ‘사당오락(四當五落·4시간 자면 붙고, 5시간 자면 떨어진다는 뜻)’이란 말처럼 하루 한 시간이라도 더 공부하고 싶지만, 졸음과 싸우는 게 쉽지 않다. 그러나 잠을 줄이는 것만이 능사일까? 홍일희 서울수면클리닉 원장의 생각은 다르다. 낮잠과 밤잠 모두 잘 자야 학습 능률이 오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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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낮잠을 쫓아내라? 낮잠을 즐겨라!
수험생이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은 일정한 시간에 일어나는 것. 늦게 잤건, 일찍 잤건 매일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야 자신의 생체리듬을 유지해서 숙면을 취하고 학습 능률도 높아진다.
늦게 자는 게 습관이 된 수험생이라면 아침에 일어나서 30분 정도 햇빛을 쬐어보자. 햇빛을 쬐면 체내에 수면을 조절하는 호르몬인 멜라토닌이 분비되는데, 이 호르몬 덕분에 밤에 30분 일찍 자게 된다. 수험생에게 일찍 자는 것이 중요한 데는 이유가 있다.
홍 원장은 “잠에는 얕은 잠, 깊은 잠, 꿈꾸는 잠의 세 단계가 있는데 이 중 수험생에게 꿈꾸는 잠인 ‘렘 수면(REM sleep)’이 꼭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렘 수면은 낮에 배운 내용을 기억 장치에 넣고 정리·저장하는 단계. 버릴 것은 버리고, 기억할 것은 기억하는 ‘컴퓨터 백업’ 같은 역할을 한다. 렘 수면이 부족하면 학습 능률이 크게 떨어진다. 늦게 자는 수험생은 바로 이 렘 수면이 부족하다. 사람은 하룻밤에 얕은 잠, 깊은 잠, 꿈꾸는 잠을 차례대로 4, 5회 반복하는데, 렘 수면은 보통 잠들고 나서 70∼120분 후에 찾아오기 때문이다. 새벽 2시에 자서 아침 6시에 일어난다면 렘 수면의 뒷부분이 잘려버리는 셈이다.
수업시간 사이사이 ‘조각잠’인 낮잠을 자면 어느 정도 피로가 풀린다. 단, 낮잠은 오후 두 시 이전에 자야 한다. 두 시 이후에 자면 그날 밤에 잠을 설칠 가능성이 높다. 점심 식사 후 20분 정도 낮잠을 자는 것이 가장 적당하다. 수업시간에 잠이 올 때는 교사에게 양해를 얻고 교실 뒤로 가서 서서 수업을 듣는 것이 좋다. 가만히 서 있기보다 살짝 팔다리를 돌리는 등 몸을 움직이며 서 있어 보자. 육체활동을 하면 뇌를 깨울 수 있어 잠도 깬다.
▼기자가 해보니▼
기자는 기상시간이 6시∼7시 반으로 들쭉날쭉한 편이다.
일단 기상시간을 6시 반으로 고정했더니 억지로라도 일찍 잠자리에 들게 됐다. 아침에 일어나면 30분 동안 햇빛이 잘 드는 창가에서 식사를 하며 신문을 읽었다. 기분 탓인지 평소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어도 쉽게 잠들었다. 점심 먹고 20분간 낮잠을 잤더니 손발이 떨리는 만성피로 증세도 덜했다. 눈앞이 흐려지고 졸음이 밀려올 때마다 휴게실로 가서 가벼운 스트레칭을 했다. 교실 뒤에 서서 수업을 들으면 필기를 제대로 할 수 없으므로, 암기과목 수업에는 이 방법을 쓰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밤잠을 줄여라? 밤잠을 충분히!
“아인슈타인은 하루에 10시간을 자지 못하면 아무 일도 못했고, 에디슨은 하루에 4시간을 자도 전혀 피곤해하지 않았다고 해요. 사람마다 잠자는 시간이 다른 거죠.”(홍 원장)
자신에게 적절한 수면시간을 알려면 ‘수면일지’(표 참조)를 써봐야 한다. 2주일 정도 써보면 몇 시에 자고 몇 시에 일어나야 하는지 나만의 생체리듬을 알 수 있다. 아침에 일어날 때 개운하고, 낮 생활이 피곤하지 않다면 그날의 수면시간이 나에게 맞는 수면시간인 셈. 홍 원장은 “무조건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서 공부하기보다 자신의 생체리듬에 맞는 시간에 자고 일어나서 효율적으로 공부하라”고 조언했다. 무리하게 수면시간을 줄이면 만성피로에 빠져서 인지능력 기억력 집중력 사고력 판단력이 감소하기 때문이다.
잠의 질도 중요하다. 먼저 일정한 시간에 자고 일정한 시간에 일어나는 생체리듬부터 지켜야 한다. 저녁 7시 이후에는 체온이 올라갈 만한 일은 피하는 것이 상책. 열대야 때 잠 못자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때 운동을 하면 체온이 올라가 밤에 잠을 이루기가 어렵고 생체리듬이 깨진다. 운동을 하려면 점심시간에 교실 밖에 나가 햇빛을 받으며 산책을 하거나 농구를 하는 편이 좋다.
잠자기 두 시간 전부터는 잠자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 일단 뇌를 흥분시키는 컴퓨터 게임은 피한다. 공부를 할 때도 주위가 너무 밝아서는 안 된다. 잠을 자게 하는 호르몬인 멜라토닌의 생성이 억제되기 때문이다. 형광등 조명을 끄고 스탠드 조명이나 간접 조명을 켜야 한다. 고3 수험생은 긴장감, 불안감, 우울증, 스트레스 등 심리적인 요인으로 숙면을 취하지 못하는 일도 많다. 자기 전에 반신욕, 족욕을 하거나 가벼운 스트레칭, 복식 호흡을 하면 마음이 안정된다.
호두 잣 땅콩 등 견과류, 우유, 바나나 등은 고3 수험생의 간식으로 좋은 음식이다. 이러한 음식에는 햇빛을 받으면 멜라토닌으로 변하는 세로토닌이라는 성분이 들어있어 밤에 잠을 잘 자고 낮잠을 막을 수 있다.
▼기자가 해보니▼
3일간 수면일지를 적어본 결과, 기자에게 맞는 수면시간은 대략 7시간으로 추정됐다. 잠자기 전에 컴퓨터를 하지 않는 것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집에 오자마자 컴퓨터를 켜고 2, 3시간 인터넷 서핑을 하는 습관이 있었지만, 애써 컴퓨터를 외면하자 놀랍게도 11시에 잠이 들었다. 스탠드 조명을 쓰는 방법은 장·단점이 있을 듯하다. 어두운 불빛 아래 있으면 반사적으로 졸음이 밀려오는 타입이라 책상에서 잠이 들었기 때문이다. 종종 불면증으로 고생하던 터였는데 자기 전에 족욕을 하고 따뜻한 우유한 잔을 마셨더니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잠들었다.
최세미 기자 luckyse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