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을 넘나든 9km…“시간이 생명” 초긴장 질주

  • 입력 2009년 4월 8일 02시 58분


여의도성모~서울성모병원 무균병동 환자 국내 첫 대규모 이송

출발전 특수가운 무장…의료진 60명 합동작전

다행히 교통체증 없어…3시간만에 46명 옮겨

9km. 서울 여의도성모병원에서 올림픽도로를 이용해 서울성모병원까지 가는 거리다. 하지만 이는 단순한 거리의 개념이 아니다. 김현중 씨(41·경기 김포시)에게는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생사의 거리’다.

김 씨는 지난해 10월 13일 골수가 말라버려 혈액이 만들어지지 않는 ‘급성 골수섬유증식증’으로 진단받았다. 감기가 떨어지지 않아 병원을 찾아갔더니 백혈구 수치가 ‘1000’이 나왔다. 정상인의 5분의 1에 불과했다.

다행히 김 씨는 1월 8일 친형으로부터 골수를 이식받았다. 하지만 몸에서 면역거부 반응이 생겨 여의도성모병원 13층 무균실 병동에 입원했다. 백혈구 수치는 2000(정상 4000∼1만), 혈소판은 4만(정상 45만)에 불과했다. 그나마 백혈구 수치는 많이 올랐지만 음식을 먹으면 구토가 심해 영양주사에 의지한다.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로 기진맥진이다. 일반인이 흔히 걸리는 감기 균도 그에게는 치명적인 폐렴을 일으킬 수 있다.

현재 이 병원에서 김 씨처럼 무균병동실에 입원한 사람은 25명. 백혈병 등의 혈액질환으로 항암제 치료를 받기 위해 입원한 환자는 21명. 이들 46명의 환자가 최근 문을 연 서울성모병원 가톨릭암병원 BMT(골수이식)센터로 7일 이송됐다. 국내에서 병원과 병원 간에 대규모 혈액질환 환자를 옮기는 것은 이날이 처음이었다. 46명의 환자를 옮기기 위해 의료진 60여 명과 구급차 5대, 소형버스 1대가 대기했다.

김 씨가 병동을 나선 시간은 오후 1시 24분. 우선 그는 13층 무균실 병동에서 먼지가 달라붙지 않는 특수 천으로 만든 우주복(외부 가운)을 갈아입었다. 얼굴은 개인용 모자와 마스크로 깊숙이 가렸다. 준비가 끝났다는 담당 간호사의 사인이 떨어지자 두 명의 의료진이 김 씨를 ‘롱카’(구급차에 들어가는 환자 운송용 카트)에 눕히고 옮기기 시작했다.

줄곧 출발 시간을 기다린 이들의 얼굴엔 땀방울이 맺혔다. 중앙 엘리베이터를 거쳐 2층 응급실까지 내려간 시간은 1분도 안 걸렸다. 대기하고 있던 구급차에 탑승한 시간은 1시 반. 김 씨는 “두 달 동안 죽을 고비도 몇 번 넘겼던 곳이라 그나마 정 들었다”면서 “여의도에 벚꽃이 한창인데 이 좋은 곳을 떠나니 아쉬움 반, 설렘 반”이라고 말했다.

예상되는 걸림돌이 있었다. 6일부터 여의도 벚꽃축제가 시작돼 병원에서 올림픽도로로 진입하는 구간이 혹시라도 막힐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병원 측은 “두 번 정도의 리허설을 했을 때는 그렇게 막히지 않았다”면서 “하지만 돌발 상황은 항상 있을 수 있다”고 걱정했다.

김 씨를 태운 구급차는 다행히 출발한 지 3분 만에 여의도를 벗어났다. 막힘없이 힘차게 달리던 구급차가 반포대교 남단을 지나 서울성모병원 응급실에 도착한 시간은 1시 41분. 그는 응급실 엘리베이터에 몸을 맡긴 뒤 바로 19층 무균실 병동으로 이동했다.

전날 미리 처방을 내려 지혈제, 수액제 등을 바로 투입할 수 있었다. 간호사들이 김 씨의 혈압과 체온을 쟀다. 혈압은 110/60, 맥박 64회, 호흡 20회, 체온 36.8도. 모두 정상이었다. 김 씨는 “산에서 목숨을 걸고 등정한 기분”이라고 말했다.

서울성모병원 무균실은 총 108명이 입원할 수 있는 아시아 최대 규모다. 김 씨에 이어 다른 환자들이 20분 간격으로 속속 도착했다. 오후 4시 반. 환자 이송 작전은 무사히 끝났다.

이진한 기자·의사 liked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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