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자재나 오염된 공기에 국한됐던 석면의 공포가 일반 생활용품에까지 번지고 있다. 베이비파우더, 화장품, 알약뿐 아니라 고무풍선, 수술용 장갑, 자동차 브레이크에서도 탤크에 섞인 석면이 인체를 위협하고 있다. 석면에 오염된 탤크를 공급한 업체가 덕산약품공업 외에 7곳이 더 있는 것으로 조사됨에 따라 오염된 품목이 더 늘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본보 7일자 A11면 참조 화장품 5개 품목 ‘석면 탤크’ 사용
식품의약품안전청은 석면 오염 탤크가 식품·의약품·화장품·의약외품 말고도 어디에 쓰였는지 추적 중이다. 유무영 식약청 의약품안전정책과 과장은 “석면이 포함된 제품은 적지 않다. 식약청 관할 품목이 아닌 다른 공산품(풍선 등)에서도 발견될 가능성이 있으며 국무총리실에서 범부처적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식약청은 7일에 이어 8일에도 보건·의약 산업 분야, 소비자단체를 불러 석면 검출 이후 대처 방안과 행정조치에 대한 의견을 듣는 한편 중앙약사심의위원회를 열어 석면검출 탤크의 위험성에 대한 자문과 의약품 분야의 향후 처리 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다. 탤크가 문제가 되자 지식경제부도 공산품에 대한 품목 조사에 들어갔다. 그러나 아직 어떤 품목이 석면에 오염됐는지 명확하지 않아 논란만 가중되고 있다.》
피부로 흡수 안되고 먹었을때도 위험 적어 일부선 대장암 경고
흡연땐 상승작용 불러 폐암 가능성 높일 수도…구체적 방지책 없어 혼란
석면은 가루 형태로 들이마셨을 때 가장 위험하다. 가루가 아주 미세하기 때문에 사람의 코나 기관지 방어막에 걸리지 않고 폐로 들어간다. 석면을 마시기 시작하면 짧게는 10년 뒤, 평균 25∼30년 뒤 병으로 나타난다.
▽‘베이비파우더로 폐암’ 가능성 낮아=폐 안으로 들어간 석면은 폐 조직을 딱딱하게 만들고 악성중피종(흉막, 복막에 발생하는 암), 폐암을 일으킨다. 목 부위의 호흡기, 위, 대장 등에서 암을 일으킬 수 있다는 조사도 있다.
석면이 들어 있는 베이비파우더를 사용할 때 석면 노출은 석면방직공장이나 석면광산에서 작업할 때와 비교하면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이들 작업장의 석면 노출은 공기 1cc당 10f(석면 섬유 개수 10개)를 초과하는 수준인 반면 베이비파우더를 바르는 순간의 노출은 1cc당 0.4f이다. 노동부가 정한 대기 중 석면 기준치(1cc당 0.01f)의 40배를 넘지만 공장이나 광산의 100분의 4 수준에 불과한 데다 하루 종일 이 같은 농도가 지속되는 것도 아니다.
김형렬 가톨릭대 의대 산업의학과 교수는 “베이비파우더에 포함된 석면에 1, 2년 노출됐더라도 폐암이나 석면폐증이 발생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말했다.
▽석면에 노출된 후엔 담배 연기 피해야=일단 폐로 들어간 석면을 제거할 방법은 없다. 석면은 폐 속으로 점점 깊이 침투하기 때문에 빼내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흡연은 석면의 위해성을 더 높인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석면에 노출되면 상승작용을 일으켜 폐암 가능성을 높이기 때문이다.
▽화장품은 접촉성피부염 가능성=화장품 5품목에도 석면 오염 탤크가 쓰였다. ‘메이크업 베이스’는 액체 형태의 화장품으로 피부에 하루 종일 부착된다. 페이스 파우더도 마찬가지다.
석면은 피부를 통해 흡수되지 않으므로 대체로 큰 문제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지속적으로 노출됐을 때 접촉성피부염의 가능성은 있는 것으로 지적됐다. 대한피부과의사회는 “석면 가루에 피부가 계속 노출될 경우 발진이 생기고 가렵고 부어오르는 등의 접촉성피부염 증상이 생길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알약이 서로 달라붙지 않도록 하는 물질에 일부 석면이 섞여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그러나 위험성은 미미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교수는 “소화기를 통한 독성 연구를 보면 전체적으로 위해가 없다고 결론내리고 있다”며 “하지만 일부 연구에서는 대장암의 위험을 경고하고 있어 안심할 수만은 없다”고 말했다.
▽풍선 사용 당분간 조심해야=지식경제부는 탤크가 문제가 되자 전기제품, 자전거, 풍선 등 3가지 품목을 샘플 조사했다. 전기제품과 자전거는 문제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전거의 경우 과거 밴드 브레이크에 석면을 사용했지만 최근에는 사용하지 않는다.
풍선은 샘플 조사에서 석면이 나오지 않았지만 전수 조사가 아니라는 한계가 있다. 풍선 내 석면이 들어 있다면 호흡기로 바로 유해물질이 들어가기 때문에 더 위험할 수 있다.
송재빈 기술표준원 제품안전정책국장은 “탤크가 들어간 공산품이 전기제품, 자전거, 풍선 이외 어떤 것들이 있는지 파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2007∼2009년 탤크 수입업소 목록을 통해 파악한 결과 탤크는 전기제품 절연재, 비닐하우스의 비닐, 자동차 제조공정 일부에서도 사용된 것으로 조사됐다.
▽주먹구구식 관리 실태=석면은 세계보건기구(WHO)와 국제암연구소(IARC)가 지정한 ‘1급 발암물질(발암성이 확실한 물질)’이다. 2004년에 이미 베이비파우더의 석면 탤크 오염 가능성이 제기됐지만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은 이달 1일 다시 베이비파우더 오염 파동이 보도되자 다음 날 식약청장 직권으로 ‘무검출 원칙’을 세웠을 뿐이다. 그러나 아직도 검출되지 않아야 한다는, 말 그대로 ‘무검출 원칙’만 있을 뿐 구체적인 방지책은 없다.
김현지 기자 nuk@donga.com
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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